협상장 안 나타난 이란, 트럼프 일방적 휴전연장 선언

이란 “시간벌기용 계책”… 해협 봉쇄 대 역봉쇄 지속

이란 내 협상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 갈등도 주요 변수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보 속 중동 정세 불확실성 증폭

이란 테헤란에서 지난 1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란 테헤란에서 지난 1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이란 측이 최종적으로 협상단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JD 밴스 부통령이 이끄는 미국 협상단의 출국도 전격 취소됐다.

일촉즉발의 확전 위기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휴전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며 정면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피했다.

그러나 이란이 미국의 휴전 연장 조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중동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미국과 이란 양측은 21일(현지시간) 파키스탄의 중재로 2차 종전협상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란의 불참으로 대화의 문은 닫혔다. 이란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이란 협상단은 미국이 초기 합의된 ‘10개 조항 프레임워크’를 어겼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적대적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협상 불참을 최종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려던 JD 밴스 부통령의 발길도 묶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측 협상 조건에 대한 이란의 무응답이 외교 절차의 일시 중단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특유의 ‘깜짝 행보’를 보였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지도부와 대표단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공격을 유보해 달라는 (파키스탄 측의) 요청을 받았다”며,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휴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불과 몇 시간 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폭격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결정이다. 구체적인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이번 연장은 사실상 종전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군사 행동을 멈추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즉각 무시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22일 “이란은 미국의 일방적인 휴전 연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국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은 이란이 미국의 조치를 기습 공격을 위한 시간벌기용 계책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은 미국이 휴전을 선언하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해상 봉쇄를 풀지 않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엑스(X)를 통해 “상선을 나포하고 봉쇄하는 것은 전쟁 행위이자 휴전 위반”이라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미군은 최근 오만만에서 이란 화물선을 나포한 데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란 연계 유조선 티파니호를 나포하며 경제적·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미 재무부 또한 이란에 무기를 지원한 개인과 단체에 대해 신규 제재를 부과하며 ‘채찍’을 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은 연장하되 “우리 군에 봉쇄를 지속하고 모든 면에서 준비 태세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압박 카드를 끝까지 쥐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협상이 공전하는 배경에는 이란 내부의 극심한 분열도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신 보도와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현재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의 외교를 옹호하는 협상파와 이에 반대하는 강경파로 나뉘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미국 악시오스(Axios)는 20일 보도를 통해 이란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과 아흐마드 바히디 이란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 사이의 논쟁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혁명수비대 측은 대미 협상단이 자신들을 대변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며, 1차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대표단을 소환해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차 협상 당시 파견된 80여 명의 이란 대표단 내부에 핵 합의 경험이 있는 외교관부터 미국을 극도로 혐오하는 강경파까지 섞여 있어, 중재국인 파키스탄이 정작 미·이 협상보다 이란 내부 갈등을 중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비꼬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직접 소통하는 바히디 사령관 등 강경파가 실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란이 통일된 협상안을 가지고 다시 테이블에 앉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휴전 연장 결정은 국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 초반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대규모 확전은 11월 중간선거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위해 폭격을 예고하면서도, 실제로는 파키스탄의 중재 요청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빌려 퇴로를 확보하는 특유의 실용주의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격 시점을 수차례 번복하고 휴전 종료 시점조차 오락가락하는 그의 ‘갈지자’ 행보는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불확실성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분간 미국과 이란은 전면전이라는 파국은 피한 채 아슬아슬한 휴전 상태를 이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정상화라는 핵심 쟁점에서 양측의 간극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언제든 작은 충돌이 큰 불씨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반발 강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는 해상 봉쇄 카드는 일단 지렛대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란이 현재의 봉쇄를 더 강화하면 그 효과는 상쇄된다. 휴전 시한이 종료되고 2차 협상이 불발됐음에도 휴전이 연장됨에 따라 파국은 일단 면했지만 불확실성은 계속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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