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지난해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 탄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 수 없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교황 레오 14세가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 정책을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고, 베네수엘라 작전 직후엔 '힘에 기반한 외교'를 문제 삼으면서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는 이란 전쟁 국면에서 다시 표면화됐다. 갈등의 강도는 더 커졌다.
교황은 평화와 대화, 협력을 강조하면서 전쟁에 맞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교황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전쟁을 정당화하며 내세운 '현대판 십자군' 주장에 "하느님은 그런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일축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문명 말살 위협에 대해선 "진심으로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익과 힘의 논리를 앞세워 교황을 직격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불러 과거 왕권이 교황권을 압도하게 된 계기가 된 '아비뇽 유수'를 언급하며 압박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JD 밴스 부통령조차 이에 동조해 교황에게 "발언에 신중하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을 비판한 뒤 자신을 예수처럼 묘사한 합성 이미지를 트루스소셜에 올려 신성모독 파문을 불렀다. 교황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신성한 것을 오염시키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의 입장은 분명하다. 교회는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하며, 전쟁과 불의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담은 '사목헌장'이 말하듯, 세상의 고통과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게 교회의 책무인 만큼 교황은 "전쟁을 멈추고 약자를 보호하라"고 촉구한다.
이런 레오 14세의 '쓴소리'가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난 2016년 국경 장벽을 세우려는 트럼프의 구상에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직전 부시 행정부에 특사를 보내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든 사람은 평화를 만들기 위한 공동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 권력과 교황청의 긴장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돼왔다. 그런데 지금의 갈등은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교황 갈등과 비슷한 사례를 찾으려면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매우 이례적'이라고 우려했다.
이례적이라 불릴 만큼 격화된 이 충돌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정치 방식이 있다. 그의 행보는 권력을 넘어 '신의 자리'에 서려는 듯하다. 그는 정치적 판단을 '선과 악'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자신의 입장은 곧 정의가 되고, 반대는 불의로 몰아간다. 이렇게 설정된 구도 속에서 지도자는 자연스럽게 '도덕적 심판자'의 자리에 선다. '견제'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 사법·언론·의회의 비판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겐 '국가를 해치는 세력'으로 읽힌다. 이런 시각은 지도자가 스스로를 규칙 위에 두려는 전형적 징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종교적 상징까지 끌어들였다. 자신을 예수에 빗댄 이미지를 대중과 공유하는 행위는 해프닝이 아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신의 뜻'과 연결시키는 방식은 지지층에게 정치적 선택을 '믿음'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이 경우 지도자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사명을 가진 존재'로 격상된다. 그 결과 전쟁마저 '도덕적 절대성'의 틀로 재단된다. 전쟁을 '악을 제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그 중심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힘의 행사를 윤리적 명령처럼 포장하는 순간, 지도자는 '정당성을 독점하는' 사람이 된다.
'신이 되고싶은 남자' 트럼프는 위험한 권력이다. 비판은 도전이 되며, 권력은 절대가 된다. 그러면 권력은 스스로를 교정할 능력을 잃는다. 남는 것은 그 권력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다. 권력은 신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신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 권력은 가장 강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해진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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