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를 향해 던진 돌에 세입자가 맞았다.
정부가 다주택자들의 ‘버티기’ 길목을 모두 틀어 막으며 투기 차단 방침을 확고히 했지만 규제의 부작용이 오히려 세입자를 향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집주인들이 주택 처분에 나설 경우 전월세 물건 감소로 이어져 임대차 비용 상승 압박이 커지고, 주택 보유를 택한다면 대출 상환분을 임대 보증금 인상을 통해 해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도, 안 팔아도 전월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덫에 갇히게 된 셈이다.
◇ 대출 연장 막아도 매물 증가 없어
대출 연장이 막혔지만 서울 아파트 매물은 감소세다. 정책 발표 당시 세입자 퇴거 자금 등을 마련하지 못하는 집주인들의 매물이 단기간 풀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좀처럼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일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 수는 정부가 다주택자 대출 연장 금지 방안을 발표한 이달 1일(7만7772건)보다 3% 줄어든 7만5447건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유예 종료 방침 이후, 약 5만6000건대였던 매물은 3월 들어 8만건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들어선 7만5000건대까지 내려왔다.
지난 17일부터 시행된 다주택자의 주담대 대출 연장 금지 조치는 신규 대출뿐 아니라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까지 제한함으로써 모든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1만7000가구, 약 4조1000억원의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올해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은 1만2000가구(2조7000억원)이며, 규제 지역은 서울 전체 자치구, 경기 과천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 경기 12개 지역이다.
다만, 일부 예외가 있다. △매도 계약이 체결된 주택 △어린이집으로 쓰이는 주택 △처음 매입한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문화재 주택 △인구감소 지역 주택 등은 규제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집주인이 한 채를 어린이집으로 임대했다면 1주택자로 판단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매물이 급증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미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부활을 앞두고 처분을 마친 집주인들이 많고,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보증금 인상으로 버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이번 조치는 어린이집으로 사용되고 있거나. 전세 계약 기간이 남았거나 준공 후 미분양을 주택법에 따라 매입했다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매물 출회량이 많을 순 없다”며 “대출 만기도 차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만기 날짜에 따라 분산적으로 매물이 나오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함 랩장은 “전세 가격 상승과 물건 부족이 이어지면서 전세금을 올려 대출을 상환하는 임대인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매물 증가량이 많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다주택자 잡으려다 세입자 잡는다
시장에선 다주택자 및 임대사업자에 대한 대출 봉쇄로 세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갭투자(전세 낀 매매) 금지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 이후 시장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여전히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수요자들은 배제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세 물건은 눈에 띄게 급감하고 있다. 이날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1만5388건으로, 2년 전(3만662건)과 비교해 49.9% 줄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전부에서 아파트 전세 물건이 감소했으며 노원구(-88.7%), 중랑구(-88.4%), 강북구(-82.4%), 성북구(-82.3%), 금천구(-78.4%) 등의 순으로 감소폭이 컸다.
전월세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천구(51건), 중랑구(50건), 강북구(53건) 등 외곽지역의 전세 물건은 50여건에 불과했다.
전세 물량이 감소하면서 전셋값은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6억149만원으로 6억원을 재돌파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6억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10월(6억1694만원) 이후 3년 5개월 만이다.
황종규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차인 중에는 집을 사고 싶어도 현금 조건을 갖추지 못해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대출을 막아 매물을 늘리면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이 가능해질 것으로 (정부가) 판단하고 있지만, 임차인이 매수하지 못하면 또 다른 현금 부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주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대책 취지도 의미를 잃게 된다”며 “당장 매수할 수 없는 세입자들이 비자발적 이주를 해야 하는 부작용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공급 부족이 이어지며 비아파트 전셋값도 상승세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연립·다세대 주택의 평균 전세가격은 13개월 연속 오르며 올해 3월 기준 2억3377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 3월(2억3443만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 “비싸서 못 살겠다”…서울 떠나는 수요자들
치솟는 전세가격에 서울 거주를 포기하고 경기도로 떠나는 사람들도 늘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최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소유권이전등기(매매) 신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기준 경기도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 주택 등) 매수자 중 서울 거주자 비중은 15.69%로, 2022년 6월(16.28%) 이후 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경기 아파트 매매가격을 뛰어넘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경기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5억6624만원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6억149만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서울 집값과 전월세 비용 모두 크게 오르며 주거 부담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수도권 인접 지역으로 이동하는 탈서울 흐름이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안다솜 기자(cotton@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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