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시공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재건축 경쟁입찰이 오히려 정비사업 조합의 사업 추진 발목을 잡는 복병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 경쟁입찰은 더 나은 조건의 설계와 공사비 조건을 챙길 수 있지만, 최근 관련 분쟁이 잦아지면서 기대 효과가 오히려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5구역은 최근 시공사 선정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사업은 현대건설과 DL이앤씨의 경쟁입찰이 성사됐는데, 입찰제안서 개봉 과정에서 DL이앤씨 측 관계자가 펜카메라로 경쟁사의 입찰 서류를 촬영한 사실이 발견돼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현대건설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며 입찰 절차가 중단됐다. 현재 조합은 현대건설과 DL이앤씨 양측에 재발 방지 확약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19·25차 재건축에서는 도급계약서 반출 논란이 있었다. 이곳에는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가 입찰했는데, 양사가 도급계약서 비교표를 작성하던 도중 포스코이앤씨 직원이 서류 계약서를 외부로 반출했다가 다시 반입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불거졌다.
포스코이앤씨는 USB로 제출한 파일과 실제 종이 계약서간 내용이 동일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삼성물산은 계약서 반출 과정에서 기존에 제출하지 않았던 일부 서류가 추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조합과 양사 모두 문제 제기를 자제해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향후 분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성동구 성수4지구에서는 시공사 간 개별 홍보 문제가 불거져 입찰이 무효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지난 2월 참여해 경쟁입찰이 성사됐는데, 조합이 시공사 서류 미비 여부를 문제 삼다가 논란이 커져 시공사 선정 시기가 3개월 이상 지연됐다. 현재 재입찰을 진행 중이지만 유효한 입찰이 성사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시공사 입찰 자격 제한을 규정하는 기준이 각 조합에 있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성수4지구처럼 입찰 무산이 될 수 있고, 기준을 유하게 적용하면 신반포19·25차에서처럼 논란이 잔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공사 모집 과정 중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늘다보니 일부 사업장에선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업계는 오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부동산 규제 문턱이 기존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시공사 선정을 조기에 마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거 이후 정비사업 조합원 중도금과 이주비,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강화되면 재건축 사업성은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다.
서울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기존엔 경쟁입찰을 유도하는 것이 조합에 유리한 쪽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며 "추가 규제가 나오기 전에 시공사 모집을 끝내는 것이 사업에 더 유리할 거란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순원 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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