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에 짙게 드리운 구름. AP 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에 짙게 드리운 구름. AP 연합뉴스

이란이 전격적으로 선언했던 호르무즈 해협 개방 조치가 불과 하루 만에 뒤집히며 중동 정세가 다시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재점화되면서 미국과 이란 간 2차 종전 협상 역시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 합의에 맞춰 이란이 발표했던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18일(현지시간) 재봉쇄로 귀결됐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은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며 현재 해협이 이란군의 통제 아래 있다고 밝혔다.

이란 측은 재봉쇄의 이유로 미국의 해상 봉쇄를 지목했다. 자국이 선의로 해협을 개방했음에도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루 전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휴전 기간 동안 모든 상선의 항해를 전면 허용한다”고 밝힌 조치는 사실상 무효화됐다.

현지 해역에서는 긴장이 즉각적으로 고조됐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세력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겨냥해 공격을 재개한 정황이 포착됐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는 오만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이 고속정 공격을 받았다는 신고를 접수했으며, 오만 북동부 해상에서도 컨테이너선이 미확인 발사체에 피격됐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일부 선박들은 이란 해군으로부터 “해협이 다시 폐쇄됐다”는 무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기대를 모았던 미·이란 2차 종전 협상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당초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 휴전안’이 수용되면서 오는 21일(이란 기준 22일)을 시한으로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됐지만, 현재로서는 협상 일정조차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차관은 “합의의 틀에 대한 의견이 모일 때까지 협상 날짜를 정할 수 없다”며 미국의 과도한 요구가 협상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했다. 협상 자체의 동력도 약화되는 분위기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란군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이란군의 드론과 해군 전력을 언급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겨냥해 추가 타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해군을 직접 언급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를 주도한 군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군부 성향 매체들은 전날 해협 개방을 선언했던 아라그치 장관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외교적 유화 조치와 군사적 강경 노선 간 충돌이 표면화되는 양상이다.

전쟁 발발 50일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일부 긴장 완화 신호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 2월 28일 이후 폐쇄했던 자국 영공을 49일 만에 부분적으로 재개방했다. 민간항공청은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6개 공항 운영을 재개하고, 동부 영공 항로를 국제 항공기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이 재점화되면서 외교적 해법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해협 개방과 재봉쇄가 하루 만에 뒤집히는 상황에서, 중동 긴장은 물론 국제 에너지 시장까지 불안정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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