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개방 발표를 불과 20분 앞두고 국제유가 하락에 거액을 건 거래가 포착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에 내부정보 유출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동 전황과 외교적 결정이 시장 가격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특정 투자자들이 발표 이전에 방향을 정확히 맞춘 거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을 사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발표 직전 단 1분 사이 브렌트유 선물 7990계약이 집중적으로 매도됐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집계 기준 약 7억6000만달러, 우리 돈 1조원이 넘는 규모다.

거래가 이뤄진 지 약 20분 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휴전 기간 동안 호르무즈 해협 항행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고, 직후 국제유가는 장중 최대 11% 급락했다. 결과적으로 매도 포지션으로 막대한 차익을 거뒀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절묘한 타이밍’의 거래가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7일 미·이란 간 2주 휴전 발표 직전에도 약 9억5000만달러 규모의 원유 선물 매도가 선행됐고,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에너지 시설 공격 연기를 발표하기 15분 전 5억 달러 규모의 매도 계약이 체결됐다.

당시에도 발표 직후 유가는 15% 급락했다. 전황의 중대한 전환점과 거래 시점이 반복적으로 맞물리면서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단지 원유 시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이란 발언이 강경과 유연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워싱턴 내부 인사들이 정책 방향 변화를 사전에 인지하고 투자에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안보적 결정이 곧바로 시장 가격으로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접근 가능한 일부 집단이 ‘정보 우위’를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미 감독 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원유 선물시장에서 제기된 불공정 거래 의혹과 관련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ICE 선물거래소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거래 주체와 정보 접근 경로를 규명하기 위한 사전 조사 성격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이벤트 직전 반복되는 대규모 포지션은 내부 정보 이용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시장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유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정보 경쟁’이 단순한 투자를 넘어 정치와 권력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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