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무시했다 전쟁 협력 못얻어

교황 설전·‘친구’ 멜라니도 비난

UAE·베트남 등 연일 방중 러시

우크라전 관련 중러 결속 다질듯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EPA 연합뉴스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EPA 연합뉴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맞서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동맹들에게 군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거친 언사와 ‘기행’ 때문에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의 갈등을 키우며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하고 있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각국 지도자들을 베이징으로 끌어들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어 대비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15일 베이징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중러는 더욱 긴밀하고 강력한 전략적 협력을 통해 정당한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 봉쇄 조치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 대응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AFP통신은 라브로프 장관이 에너지 부족 문제와 관련해 중국 등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중·러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등 다자 틀을 통해 국제질서 재편에도 공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도 가시화되고 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올해 상반기 중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푸틴 대통령의 방중 시점이 5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러 정상 간 밀착은 미국 견제의 상징적 장면이 될 전망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러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 스페인 총리 등 주요국 정상급 인사들이 거의 동시에 베이징을 찾았다.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신화통신 계열 SNS는 “특별한 행사 없이 여러 정상급 인사가 동시에 방중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뤄밍후이 부교수는 연합조보에 “각국이 에너지 위기 대응과 함께 중동 갈등 완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중동 평화 4대 원칙을 제시하며 중재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균열 조짐이 뚜렷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총리는 17일 호르무즈 해협 항행 안전을 논의하는 국제 화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미국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을 의식한 것이지만,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접근에 거리를 두고 독자 노선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동맹과의 갈등을 키우는 모습이다. 그는 교황을 비판한 데 이어 이를 비판한 조르자 멜로니 총리까지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이탈리아 코리에레델라세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를 향해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한때 ‘가장 가까운 유럽 파트너’로 평가받던 양측 관계가 중동 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스페인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시 주석과 만나 “국제 문제에서 중국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여러 전선에서 물러나고 있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리더십 약화를 지적했다. 미국 대신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에 손을 내미는 등 우군 확보에 나섰다. 해상봉쇄 다음날 그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양국은 과거 관세 갈등 등으로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실질적 협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세력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원 진량샹 센터장은 “위기 완화의 열쇠는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의 외교적 공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사이, 시진핑 주석은 다자주의와 중재를 앞세워 외교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대비는 앞으로 국제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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