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주식회사란 각각의 개인들이 공동의 목적, 즉 영리를 창출하기 위해 투자한 만큼 유한한 책임을 나누고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 형태다. 투자한 만큼 책임을 지는 대신 그 과실도 나눠가진다. 주식회사의 근간은 주주에 있다. 노동자도 핵심 요소 중 하나이긴 하지만, 이익을 배분할 때 주주가 우선이고 노동자는 그 다음이다.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가 통제해 노동자에게 똑같이 나누는 사회주의식 기업과의 차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큰 축인 ‘반도체’ 산업에서 사회주의 기업과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주주 배당의 4배에 이르는 40조원 이상의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했으며, 수십년 전 냉전시대로 돌아간 듯 비노조원을 색출하겠다는 식의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이고 있다. 노조의 주장은 주주보다 조합원들이 더 가져가야 한다는 식이다.

이에 주주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회사 경영진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겠다고 한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에 대한 주주들의 항의를 받았다. 증권사들도 하이닉스의 성과급 제도에 대해 “재무적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선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노동도 일종의 투자인 만큼 주주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주주는 손실을 감수한다. 그러나 노조는 절대 급여를 깎지 않는다. 영입이익 15%를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영업손실 15%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전혀 없다.

노동의 대가를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최근의 반도체 초호황이 과연 노동의 결실만인지는 의문이다. 최근의 초호황은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메모리반도체 수요 급증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강 체제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나마 SK하이닉스의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선제 대응한 덕분에 지난해부터 이미 역대급 수익을 거두고 있어 명분이라도 있다. 그에 비해 삼성전자의 대응은 뒤쳐졌다. 이로 인해 1992년 이후 33년 간 지켜오던 D램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난해 SK하이닉스에 뺏겼다. 그런데도 삼성전자 노조는 SK하이닉스보다 성과급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설령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역대급 부가가치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조금은 천천히 열매를 나눠 갖기를 제안하고 싶다. 특히 중동 사태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반도체 초호황 덕에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과 배분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반도체 초호황 등을 고려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 대비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숫자다. 반도체 초호황에 초과세수를 확보한 정부는 중동발 경제위기에 대응해 추가 국채 발행 없이도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AI발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은 203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호황은 이제 막 시작됐고, 지난달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8.1%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수출이 흔들리면 하반기 경제 운용 계획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을 넘보고 있다. D램 시장에선 이미 기술 격차를 2년 수준까지 추격했고,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진즉 한국을 넘어섰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첨단 반도체 자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에선 HBM을 넘는 차세대 반도체로 또 한번 진화하지 않는 한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노조원 자녀들의 미래 일자리와도 직결된다. 이런 시기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파업은 정말 위험하다. 만약 삼성전자 노조가 수억원의 성과급에 취해 파업하는 순간, 회사는 물론 국가 경제, 그리고 일자리까지 모두 무너질 것이다.

박정일 산업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2
  • 화나요 4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