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시 에너지·식량·성장 동반 타격 우려

UNDP "전란 후폭풍에 37개 에너지 순수입국 피해 집중될 것"

취약계층 구제에 8.9조원 시급… 서방국은 원조 25% 삭감 ‘엇박자’

레바논 베이루트 근교의 한 텐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피란중인 하이파 켄조 씨가 15일 전에 이 곳에서 낳은 딸을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 베이루트 근교의 한 텐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피란중인 하이파 켄조 씨가 15일 전에 이 곳에서 낳은 딸을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전 세계 약 325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국제기구의 경고가 나왔다. 에너지 가격 폭등, 식량 안보 위기,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가 맞물린 '3중 쇼크'가 경제 체력이 약한 개발도상국들을 집중 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 회의에 맞춰 발간한 특별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알렉산더 더크로 UNDP 총재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그동안 국제사회가 쌓아온 경제 개발의 진전이 후퇴하는 역개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충격파는 지역별로 매우 불균등하게 가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휴전이 성사된다면 매우 환영할 일이지만 당장 포성이 멈춘다 해도 경제적 파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며 "특히 간신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났던 빈곤국 국민들이 다시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이란 전쟁의 파장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했다. 가장 심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석유와 가스 생산에 6주간 대규모 차질이 빚어지고 고비용 구조가 8개월 이상 고착화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전 세계에서 약 3250만명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21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중상위소득국(UMIC)의 빈곤선인 하루 수입 8.30달러(약 1만2350원)를 밑도는 수준이다.

새롭게 발생하는 빈곤 인구의 절반은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아프리카, 아시아, 페르시아만 인접국 및 군소 도서 개발도상국(SIDS) 등 37개 에너지 순수입국에 집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UNDP는 벼랑 끝에 몰린 개도국 취약 계층을 구제하기 위한 해법으로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제시했다. 더크로 총재는 "경제 충격을 상쇄하고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건져내는 데 약 60억달러(약 8조9000억원)가 필요하다"며 국제기구와 다자간 개발은행들의 긴급 재정 지원을 촉구했다.

특히 무차별적인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보편적인 보조금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 가구로 재원이 누수될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지속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차선책으로는 전기나 취사용 가스 등 필수 에너지에 한정한 일시적 바우처 지급을 권고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조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개도국에 대한 긴급 수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임에도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은 자국 내 경제 사정을 이유로 대외 원조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핵심 공여국 협의체인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의 2025년 원조 지출액은 1743억달러(약 259조4000억원)로 전년 대비 무려 4분의 1가량 급감했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전쟁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단순한 에너지 위기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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