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마이센
18세기 유럽에선 '하얀 금'으로 불리던 보물이 있었다. 바로 단단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기'(瓷器)다.
유럽의 도자기 소비는 1708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유럽 땅에서 '하얀 금'이 나기 이전과 이후다. 1708년 이전까지 유럽에선 자기를 소유하려면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을 기다려야 했다. 자기를 만드는 제작기술이 유럽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자기의 탄생은 곧 '마이센의 탄생'이다. 1701년 독일의 영방(領邦) 국가인 작센의 군주,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와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라는 약사 출신의 연금술사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 시작점이다.
약을 만드는 것보다 연금술에 관심이 있던 뵈트거는 금으로 바꾸는 촉매, 이른 바 '현자의 돌' 연구에 매진했는데, 은을 금으로 바꾸는 시연을 했다는 사실이 독일의 또 다른 연방 국가, 프로이센에 들어가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된다.
시연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의 군주, 프리드리히 3세가 뵈트거를 베를린 궁으로 부르자, 뵈트거는 비텐베르크로 내뺐다. 그 시연엔 눈속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3세의 수배령에 결국 비텐베르크 당국에 체포된 뵈트거는 아우구스트 2세에게 비텐베르크에서 연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편지를 보낸다.
이에 아우구스트 2세는 뵈트거를 드레스덴으로 데려오고, 프로이센이 그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어느 귀족의 집에 숨겨준다. 뵈트거는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자 또 내뺀다. 1703년 오스트리아로 도망쳤다가 잡힌다.
이 도주는 그의 신분을 '죄수'로 끌어내렸고, 아우구스트 2세는 일정 시점까지 금을 만들어내라며 뵈트거를 압박했다.
뵈트거는 또 한번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바로 본인에게 붙여진 감시인 에렌프리트 발터 폰 치른하우스이다. 도자기 제작에 관심이 깊었던 이 감시인의 권유로 뵈트거는 도자기 개발이라는 아예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고, 마침내 1707년 '황금'이 아닌 '하얀 금', 경질 자기를 만들어낸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710년, 드레스덴에 도자기 공장이 지어지고, 이후 이 공장이 마이센으로 이전된다. 유럽 최초의 도자기 '마이센'의 탄생이다.
300년이 흘렀다. 마이센은 정교함이 자아내는 세련됨을 무기로 '명품 자기'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모든 프린팅 과정은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커피잔과 그릇의 꽃, 나무, 새, 곤충은 공방 기술자들이 몰입해 만들어 낸 예술품인 셈이다.
명성이 쌓이면서 모조품도 기승을 부려, 마이센이 고안해 낸 게 있는데, 도자기 바닥의 쌍검마크다. 진품임을 입증하는 이 마크는 그 형태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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