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만 최고위급 협상에도 결렬

밴스 “레드라인 제시, 지켜볼 것”

이란 “지역내 우방과 협의 지속”

입장 차에도 추가 협상안 ‘여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핵심 쟁점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됐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47년 만에 성사된 최고위급 대면 협상이었지만, 양측은 핵 농축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휴전 대상에 레바논까지 포함할 것인지 등을 놓고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직접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만큼 추가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이슬라마바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과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합의 없이 미국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그는 약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동안 미국의 ‘레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했지만, 이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약속이 필요하다”며 핵 프로그램 포기를 핵심 요구로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최고이자 최종인 제안을 제시했다”며 향후 이란의 답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혀 협상의 불씨를 완전히 끄지는 않았다.

이란 역시 협상 결렬 사실을 확인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타스님통신과 메흐르통신 등에 “몇 가지 사안에서 상호 이해에 도달했지만 2~3개 주요 쟁점에서 이견이 남아 합의가 불발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회담이 깊은 불신 속에서 진행됐다며 “한 차례 협상으로 타결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란은 파키스탄과 지역 내 우방들과의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린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란의 핵 농축 및 핵 보유 문제다.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 처리와 향후 핵무기 개발 포기를 포함한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약속을 요구했지만, 이란은 이를 주권 문제로 보고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15개항의 평화안을 통해 이란 핵 프로그램의 영구적 제한을 요구한 반면, 이란은 동결 자산 해제와 평화적 핵기술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맞섰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도 핵심 이슈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해협의 즉각적인 항행 자유 보장을 요구했지만, 이란은 최종 합의 이전에는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 관계자를 인용해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란이 통행료 부과 등 단독 통제 의지를 굽히지 않은 반면, 미국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알려졌다. 타스님통신도 “호르무즈 해협 사안에서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문제까지 겹치며 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아랍권 매체 알아라비알자디드는 “레바논을 휴전 대상에 포함할지를 둘러싼 갈등이 최대 장애물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이란은 레바논 내 교전 중단을 휴전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휴전 발표 후에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이 이어지면서 양측 간 불신을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이란 종전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을 하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AP=연합뉴스
미-이란 종전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을 하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AP=연합뉴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투입하고 기뢰 제거 작전에 착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압박 카드였지만, 이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협상 환경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다.

이번 협상을 중재한 파키스탄은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파키스탄 유력 영자지 ‘돈’(Dawn)에 따르면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양측 모두 휴전 약속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며 “회담이 끝났지만 평화를 위한 긍정적 기조가 유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파키스탄이 앞으로도 미·이란 간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비록 협상은 결렬됐지만, 완전한 실패로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입장 차는 여전히 크지만, 직접 대화 자체가 전쟁 종식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양측은 기술적 세부사항까지 논의하는 단계에 일부 진입하며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번 협상은 핵심 쟁점에서의 간극을 확인한 자리였다는 평가다. 향후 추가 협상 일정은 불투명하지만, 양측 모두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은 만큼 휴전 기간 연장과 함께 후속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동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는 아직 남아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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