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요격 흔적에 항행 거부”… 2만여명 선원들 ‘현대판 인질’ 전락

“차라리 그만두고 귀국하겠다” 절규… 국제사회 인도적 대책 마련 시급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6주째 이어지면서 인근 해상에 고립된 선원들이 정신적 한계에 직면했다. 영국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인근에 정박 중인 유조선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방치된 선원 2만여 명의 참혹한 실상을 보도했다.

현재 현장의 선원들은 미·이 양국의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드론 공격과 기뢰 위협이라는 실질적인 생명 위협 속에 놓여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선원은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려 노력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주변에는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선 수십 척이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선원들의 공포가 극에 달한 결정적 계기는 2주 전 인근 쿠웨이트 유조선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부터다. 휴전 발표 이후에도 상공에는 미사일 요격 흔적이 선명하게 남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자 선원 대다수는 목숨을 건 항행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해당 선원은 “이미 한 달 전 선장에게 해협을 통과할 의사가 없다고 통보했다”며 “동료 중 90%가 항행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특히 동료 중 한 명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붕괴 증세를 보여 다른 선원들이 상시 감시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운수노조연맹(ITF)의 집계 결과도 사태의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분쟁 발생 이후 300여척의 선박에서 1000여건의 상담이 쏟아졌으며, 이 중 20%는 조기 귀국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장기 고립으로 인해 식량과 식수, 연료마저 바닥을 드러내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실정이다.

해운 전문가들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적인 대체 인력 투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만, 위험 지역 근무 강요가 불가능한 규정상 전쟁으로 고국 복귀가 어려운 우크라이나 선원 등 생계가 절박한 이들이 사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의 선원은 “평생 유조선에서 일하며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일단 집으로 돌아가 몇 달은 쉬어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토로하며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책을 호소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의 선박. 로이터=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의 선박. 로이터=연합뉴스
권순욱 기자(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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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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