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챈스 일병의 귀환’이 생각났다. ‘자유로운 바다’의 시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국의 F-15E 장교 구조 작전을 보면서, 그 영화(‘Taking Chance’)의 장면들이 여럿 떠올랐다. 다시 보았다.
실화다.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챈스 펠프스 일병. 그의 영현 봉송 임무에 자원했던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대 중령의 운구 여정을 다룬 영화이다. 그는 자신이 지휘했던 해병대 부대원들이 이라크전에서 전사할까 걱정하며 매일 전사자 명단을 확인한다. 그러다 고향 콜로라도 출신의 신병 챈스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는 날이 밝자 봉송 임무를 자원하고 다음날 출발한다.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의 안치소에서 유품과 성조기를 받아 가족이 살고 있는 와이오밍 주로 가며 많은 국민들을 만난다. 항공사 발권 담당 여직원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항공권은 1등석으로 준비해놨습니다. 희생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스튜어디스는 그에게 와 십자가 목걸이를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준다. 공항의 인부 등 여러 사람들이 챈스 일병을 향해 존경과 예우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고, ‘한 해병의 귀가 여정’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작성해 챈스 일병의 부친에게 보내준다. 그 수필은 일간 신문과 해병대 잡지에 실리게 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진다.
챈스가 가족의 품으로 가는 긴 여정에서는 전사 군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공군 조종사 출신 항공기 기장은 이렇게 기내 방송을 한다. “승객 여러분이 내리시기 전에, 전사한 해병의 시신을 운구하는 중령께서 먼저 내리실 예정입니다. 해병의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을 알게 된 승객들이 조의를 표한다. 황량한 지역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스트로블의 운구 차량을 발견한 운전자들이 대낮에 라이트를 켜고 대형 트럭을 선두로 운구 차량을 앞뒤로 따르며 호송 대열을 만들어 전사한 군인에게 예우를 표한다.
실제로 미국은 그런 나라다. 이 영화의 부제는 ‘누군가 전사하면 다른 이가 그를 집으로 데려간다(when one falls, another brings him home)’이다.
‘어떤 전우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미군의 오랜 원칙이다. 단 한 명의 군인을 위해 최정예 특수부대원 네이비실 ‘팀6’ 등 수백 명과 F-35 전투기, A-10 공격기, 수송기, 헬리콥터 등 수십 대의 전력을 동원해 구조에 성공한 미국의 이번 F-15E 장교 구조 작전은 이 원칙을 다시 한번 미 국민과 군인들에게 확인해주었다.
적지에 착륙했다 고장난 수송기와 헬기를 파괴하는 등 기체 손실만 약 3억~4억달러(약 4450억~5940억원)이고, 사용된 유도 무기와 항공기 운용 비용을 모두 합하면 총 수십억 달러가 든 작전이었다. 무엇보다 적지로 들어간 군인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작전을 결행했고, 결국 부상을 입은 채 험준한 산악지대를 오르며 바위 틈에 48시간 이상 은신해있던 군인을 구출했다.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미군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습니다”(The U.S. military leaves no one behind)라고 말하며 그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미국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1명을 구하기 위해 10억달러 이상도 쓸 것’이라는 믿음, 혹시나 그럼에도 구조에 실패한다면 ‘시신이라도 어떻게든 찾아 가족에게 인계해 줄 것’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이 있기에 군인들은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은 군인들에게 존경심을 보여주고, 군인들은 믿음과 애국심으로 전장에 나가 가족과 국가를 지킨다.
자유무역과 평화라는 익숙했던 세계가 저물고 있다. ‘자유로운 바다’의 시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항행의 자유’를 지켜주었던 지난 80년의 시기는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다. 그 미국이 더 이상 막대한 돈이 드는 세계의 경찰, 함대 역할을 하기 싫다고 말하고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하고 자동차 반도체 등을 수출해야 유지 가능한 대한민국은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나. 무엇보다,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위험한 바다’의 시대가 오고 있는데,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인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가. 평화는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희생을 각오할 때만 유지된다.
나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가, 그를 끝내 데리러 갈 수 있는가. 그것이 군인을 전장에 세울 수 있는 국가의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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