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뢰 위험’ 빌미로 우회로 안내
8일 4척 통과… 2100여척 까마득
이스라엘 공습에 휴전파기 경고
협상개시 앞 통행료 관례화 우려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양국은 해협 통행 보장을 약속했지만 현실에서는 선박 이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까지 겹치면서 휴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휴전 발표 다음 날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단 4척에 그쳤다.
선박운항 정보사 케이플러 자료에 따르면 8일 통과한 선박은 건화물선 몇 척일 뿐, 유조선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이전 하루 평균 130~140척 이상이 오가던 해협이 여전히 마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해협 내부 페르시아만에 대기 중인 선박이 2100여척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통행으로는 봉쇄 해제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도 해로 사정을 들어 “하루 10여척으로 통행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이스라엘이 휴전 발표 후 레바논을 더 강력히 공격하자 휴전 약속 위반이라며 사실상 다시 폐쇄한 상태다.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이란이 해협을 ‘개방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강력한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이 기뢰 위험을 이유로 자국 연안에 가까운 좁은 항로로 선박을 유도하고 있으며, 사전에 혁명수비대의 승인과 항로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더해 통행 전 사전 협의를 전제로 사실상의 통행료를 요구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제 공로인 해협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강경 대응 대신 현실을 일정 부분 묵인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미국과 이란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합작사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그는 “해협을 보호하면서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이란이 제안한 ‘통행료로 재건 자금 확보’ 구상에 사실상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백악관 역시 해당 구상이 종전 협상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톨게이트화’를 용납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태도를 180도 바꿔 ‘공동 징수’에 ‘합작사업’까지 말하는 것은 놀라운 반전이다.
이는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성격을 인정한 현실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전쟁에서도 입증됐지만,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해협 봉쇄는 언제든지 가능하고 이를 막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럴 바에야 미국도 해협 관리에 참여해 통항의 안전을 담보하고 이익까지 챙긴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1배럴당 1달러를 주장하는 이란을 누그러뜨려 통행료를 낮춘다면 선사들로서도 항로가 막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통행료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는 미국까지 통행료 체계에 관여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가 사실상 고착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 해상 물류의 핵심 요충지에서 비용 부담이 구조적으로 증가할 경우 국제유가 상승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연쇄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선사들은 통행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선박 운항을 미루며 눈치를 보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박 20여척도 여전히 해협 인근에 발이 묶여 있으며, 재 폐쇄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휴전이 흔들리는 또 다른 축은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휴전 이후에도 레바논 전역에서 100여 곳을 공습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최소 1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헤즈볼라는 휴전 대상이 아니다”라며 공격을 늦추지 않을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이란 공습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해협 개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며 “미국이 휴전을 원한다면 이스라엘을 통제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CNN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레바논 공격 이후 해협 통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반면 미국은 레바논은 휴전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그런 약속은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합의가 깨질 경우 “심각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레바논 전선이 동시에 얽히면서 휴전은 시작부터 위태로운 형국이다. 뉴욕타임스는 양측이 모두 전쟁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협상 자체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지만,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해협 통제에서 입장차가 커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었다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이란의 통제 아래 있는 셈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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