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잃고 서초동 향하는 정치… 기꺼이 ‘초법적 공관위’ 자처한 법원
판사봉이 쥐락펴락하는 정치판… 판결 불리하면 입법 권력의 ‘사법 보복’
정쟁의 무기 된 형사사법 체계… 상호견제 잃고 폭주하는 두 권력의 난맥상
자기 꼬리를 뜯어먹는 신화 속 뱀, 우로보로스(Ouroboros). 지금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관통하는 모습이다. 정치는 스스로 타협해야 할 갈등을 사법부에 떠넘기고, 사법부는 억지로 떠맡은 판결 때문에 다시 정치적 심판대에 오른다. 판단을 위임해놓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응징하는 기괴한 순환. 이 악순환의 늪에서 법치와 의회주의가 동반 침몰하고 있다.
정당의 심장이자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공천'마저 서초동의 결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법원에 접수된 지자체장 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만 최소 9건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컷오프 효력이 정지되며 내홍에 빠졌고, 주호영 의원을 비롯한 영남권 탈락자들의 사법 대응이 빗발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대리운전비 명목으로 제명된 김관영 전북도지사 역시 징계 불복을 내세워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22년 지선 당시 총 15건이었던 소송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다.
정당이 당내 민주주의와 타협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공관위 위의 공관위'가 된 법원의 처분만 입 벌리고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진짜 비극은 법원의 문을 나선 직후에 벌어진다.
정치가 사법을 끌어들여 놓고, 막상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편향 재판부'라며 판사를 노골적으로 저격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가처분을 인용한 재판부를 향해 '셀프 배당'이라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민주당 역시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현장 검증을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입법 권력을 동원한 보복은 수치로 증명된다. 22대 국회 출범 후 불과 7개월 동안 위증·불출석 등으로 고발된 건수는 95건으로 21대 국회 전체(36건)의 2.6배에 달한다. 요건이 대폭 완화된 개정 국회증언·감정법은 1~10년의 징역형이나 1000만~3000만원의 벌금형을 정쟁의 무기로 합법화해 주었다. 스스로 룰을 지키지 못해 심판을 불러놓고, 막상 그 심판이 반칙을 잡아내고 호각을 불자 심판을 집단 폭행하는 꼴이다.
정치의 사법 압박은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시행된 법왜곡죄는 불과 2주만에 44건의 고소·고발을 양산했다. 수사관 38명과 판·검사 30여명이 표적이 됐고, 구속 재판 중인 허경영씨도 수사팀을 고소하겠다며 법을 조롱한다. 급기야 사법부 수장인 조 대법원장마저 이재명 대통령 사건 파기환송과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재판이 진행 중인 7건의 사건을 겨냥한 여당의 단독 국정조사 강행은 수사·재판 개입이라는 위헌적 뇌관까지 건드렸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78년 만에 공소청으로 전환되고, 헌법재판소 재판소원은 이미 도입되어 시행에 들어가는 등 대격변의 시기다.
정치가 스스로 갈등을 조정하는 룰을 내던진 채, 입법 권력을 동원해 사법부의 칼자루를 빼앗으려는 순간 법치는 진영논리를 사후 추인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만다.
정치가 사법을 자정의 도구가 아닌 상대를 응징하는 무기로 전락시킨 이 '리걸리즘'의 끝은 명확하다.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선악의 응징만 남은 양극화의 늪에서 우로보로스의 꼬리잡기는 결국 공멸이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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