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 유가·환율 동반 하락

원유 수송 3주 걸려 ‘보릿고개’

‘셧다운’ 나프타 가격도 2배↑

“더 큰 롤러코스터 올까 두려워”

“지금 상황은 마치 롤러코스터 중간에 잠깐 쉬어가는 오르막 같다. 이게 종착지면 좋겠지만, 이 다음에 더 무시무시하게 떨어질 것 같아 두렵다.” 익명을 요청한 한 10대 그룹 임원은 미국과 이란의 2주간의 휴전 상황을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국제유가와 환율 압박에 고사 직전까지 몰렸던 기업들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또는 이스라엘이나 하마스 등이 돌발 공습으로 협상 판을 깨버릴 경우 그 후폭풍은 과거 한 달보다 더 무섭게 한국 경제를 덮칠 수 있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종전이라는 최상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원유나 나프타 등의 공급이 원활해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종전되더라도 여전히 고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단 휴전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유가와 환율은 일제히 급락했다. 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모두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이는 지난 2일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전일보다 33.6원 내린 1470.6원으로 마감하며 한 달 전 수준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2주간의 휴전일 뿐 종전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일단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더라도 국내로 원유가 들어오기까지는 3주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4월까지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한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해운업계는 일단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자제 권고’를 언제쯤 풀어줄 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해운업체들은 이란 측이 통항해도 공격하거나 통행료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명문화된 서류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먼저 움직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밖에 있는 배들이 일거에 들어온다고 가정해도 원유저장 탱크에서 각 선박에 동시에 선적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며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기준 절차가 빠르게 진행돼도 원유를 올리고 내리는 데 3일 정도가 소요돼 공급 안정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유는 그나마 비축유로 버티고 있지만,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의 경우 이미 셧다운(일시가동 중단)이 현실화했다.

LG화학 여수공장은 여수산단 NCC(나프타 분해 설비) 2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여천NCC도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작업(TA)을 예정보다 3주가량 앞당겨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을 만드는 에틸렌의 원재료로 사실상 전 산업군에서 쓰인다. 자동차·전자·조선 등 제조업종은 물론 비닐·플라스틱 등을 주로 사용하는 소비재 업종도 영향권이다.

이날 국제유가는 하락했지만 나프타의 수급 해소는 시간이 더 필요해 당분간 높은 가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미터톤(MT) 당 1197달러로 지난 1월 1일(537달러)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월 평균 가격은 1월 557.36달러, 2월 608.60달러에서 지난달엔 1018.64달러, 이달 들어서는 1172.50달러를 각각 기록 중이다.

여기에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감당하는 카타르의 라스라판 LNG시설을 이란이 폭격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장기화가 불가피해 진 점도 여전한 부담 요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배럴당 179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말 사태가 종결된다고 해도 배럴당 150~170달러까지 오른 뒤 하반기나 돼야 86~95달러 수준으로 내려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6월부터 정상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다.

이 시나리오는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았을 경우까지는 전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이 무산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한대로 이란을 ‘석기시대’로 만들 수준의 더 강력한 공습이 시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휴전 소속이 전해진 직후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채권 금리 하락과 주식시장 반등을 동시에 견인했다”면서도 “이번 합의가 종전이 아닌 ‘2주 시한부 휴전’으로 마냥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며 “가동을 멈췄던 유정의 압력 제어, LNG 액화 설비의 초저온 공정 재점검 등 중단된 일일 약 1000만배럴의 생산량을 온전히 회복하는 데는 최소 3~4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우진·임재섭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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