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상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
혹독한 겨울,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던 수천 마리의 산양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철책 앞에 그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설치한 길고 긴 울타리였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설로 자연재해가 몰아치자 이 울타리는 거대한 무덤으로 돌변했다. 천연기념물 1급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 1000여마리가 쌓인 눈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어디 이뿐일까. 대규모로 발생했던 영남 지역의 산불은 수십 년간 생태계의 보고 역할을 하던 울창한 산림을 단 며칠 만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거나 화마가 휩쓸고 간 척박한 땅에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폭설과 산불 그리고 폭우. 기상이변이 이제 일상화된 기후재난 시대의 참혹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제도는 이러한 위협들로부터 야생의 생명들을 지켜내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제도가 재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은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서식지를 보전하고, 개체수가 줄어든 종을 자연 상태로 증식 및 복원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과거의 잣대로는 합리적인 조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재난의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지금, 사후 수습과 복원에 치중한 법체계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서식지가 파괴되고 떼죽음을 당한 뒤에 이루어지는 복원 사업은 잃어버린 생태계의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버겁다.
그래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국가의 생태계 보호 패러다임을 소극적인 사후 수습에서 선제적인 사전 방어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은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 태풍, 홍수, 강풍 등 자연재해 발생 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피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의무적으로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새로운 조항을 신설했다. 특히 ‘서식지 주변의 보호림 설치’를 법조문에 명시함으로써, 재난의 최전선에 노출된 멸종위기종의 보금자리에 물리적인 방어막을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아울러 기후부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범위에 종전의 ‘증식·복원’에 더해 ‘보호’라는 단어를 명문화했다. 부처 간 장벽을 넘어 재난 예방을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을 담아낸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부처 간 이해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과 협력 체계다. 산양 집단 폐사를 야기한 ASF 울타리 역시 방역을 우선시한 관련 부처와 야생생물 보호를 담당하는 부처 간의 소통 부재, 즉 칸막이 행정이 낳은 참사였다. 이번 개정안에 명시된 ‘보호’를 위한 부처 간 협조 요청 권한은 이러한 행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상 악화 전 위험한 인공구조물을 임시 개방하는 등 통합적 위기 대응의 든든한 근거가 될 것이다.
아울러 법안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예산 확보와 과학적 예방 시스템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서식지를 미리 파악하는 데이터 기반의 정밀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실효성 있는 보호림 조성과 생태 통로 복원을 위한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재원 투자가 병행돼야만 비로소 사전 방어라는 입법 취지가 현장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다.
생태계의 붕괴는 결국 그 정점에 있는 인류의 위기로 되돌아온다. 자연재해 그 자체를 인간의 힘으로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철저한 사전 대비와 촘촘한 제도적 안전망을 통해 참혹한 생명의 희생은 분명히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재난은 야생의 턱밑까지 다가와 있다. 입법은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방파제를 쌓는 일이다. 산불의 화마에 쫓기고 철책에 갇혀 절규하는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발의한 법안을 통해 자연재해로부터 야생생물을 보호할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생태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공존의 미래를 그리는 입법의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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