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최근 한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 격납고에서 일본항공(JAL) 그룹 신입 사원들이 입사를 기념하며 단체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로이터 통신의 사진이었다. 사진엔 “일본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 대졸자 취업률은 98.1%였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우리 청년들이 처한 혹독한 현실을 떠올렸다. 지난 2월 기준 청년(15~29세) 실업률은 7.7%로 5년 만에 최고였다. 체감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그냥 쉰다’는 청년은 50만명에 육박하며, 청년층 고용률은 43.3%로 둘 중 한 명 이상이 놀고 있다.
일본 경제는 끝난 줄 알았는데 청년 일자리를 보면 정반대다.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제 ‘잃어버릴 30년’으로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마저 든다. 그런데도 정치 지도자와 경제팀은 사상 최고 수준인 코스피지수,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도취돼 “한국 경제는 승승장구 중”이라고 한다. 청년들은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데 말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 안팎이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그 반토막인 1.0%에 그쳤다. 그것도 두차례에 걸쳐 18조6000억원의 추경을 집행한 끝에 겨우 0%대 성장을 벗어났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0년 대비 지난 3월 18.8%에 달했다.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는 같은 기간 27.9% 치솟았다. 1만원으로 점심 식사 한끼 해결하기도 벅차다. 서민들은 체감물가가 두세 배는 올랐다고 아우성이다. 정부·가계·기업 부채를 더한 국가총부채는 3월 기준 사상 처음 65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1100~12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안팎으로 치솟아 고환율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좋은 지표가 국제수지다. 인공지능(AI) 붐에 힘입어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증시 활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성장과 일자리, 물가, 재정, 원화 가치 등 좋을 게 없는 상황에서 낙관론보다 더 우려스런 건 ‘꼼수’만 좇는 모순 투성이 경제정책이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자리는 기업 경쟁력 제고와 경제의 구조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의 경제정책은 정반대다. 대기업들에 투자와 고용을 요구하면서 노동자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노란봉투법으로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
‘생산적 금융’을 모토로 내세우면서 자회사 ‘중복상장’을 금지하고 상법을 개정해 기업들이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고 여윳돈은 경영권이나 주가 방어에 쓰도록 한다. 이러면 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건 사업을 접거나, 로봇을 쓰거나, 해외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 물가를 잡는다고 외치면서 또다시 26조2000억원 규모의 엄청난 추경안을 마련해 돈을 마구잡이 살포한다. 이렇게 돈을 푸니 물가가 뛰고 원화 가치는 ‘똥값’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부동산 정책 또한 모순 투성이다. 서울 집값을 잡는다고 대출 중단과 회수, 고율 세금 부과 등 다주택자를 거세게 압박 중인데 이렇게 해서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떻게든 공급을 늘리는 게 정석인데 ‘1·29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등 구체적인 진척 상황은 감감무소식이다.
매년 신규 주택 27만 가구 착공을 추진해 오는 2030년까지 총 135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지난해 ‘9·7 대책’은 공수표 취급받은지 오래다. 그 부작용으로 전세 물량이 씨가 마르고 월세는 뛰어 서민들만 더 고통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일각에선 반도체 산단을 호남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수자원 확보와 생태계 정화에 크게 기여한 4대 강 보를 허물자고도 한다. 거의 ‘자해 수준’이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은 ‘폴리시 믹스’(정책조합)(policy mix)라고 하기엔 앞뒤가 안맞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시방편적이다. 무엇을 지향하는지 큰그림 또한 부족하다. 1940년 나치 독일의 위협이 거세지던 시기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취임사에서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드릴 것이 없다”며 국민들에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또한 1979년 원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 속에서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 모두 눈물과 땀, 그리고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며 금 모으기 운동 등 전 국민적 헌신을 끌어냈다. 2차 석유 파동으로 물가가 30% 가까이 치솟았던 전두환 정부때도 경제 운용은 경제 전문가에 맡겨 희생을 무릎쓰고 강력한 물가안정책을 시행한 덕분에 저물가와 고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에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스스로 앞장서는 지도자도, 일관된 경제정책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슈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현재의 경제정책은 일시적으로 유효할 듯 보이겠지만 그 미래는 죽도 밥도 안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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