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萬窓
중국萬窓

중국의 역사에는 수많은 책사(策士)가 등장한다. 권력자나 지도자의 곁에서 계책을 세우고 조언하며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주군(主君)을 도와 자신의 기량과 포부를 펼치며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평천하’(平天下)의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했다.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의 오기, 월나라 구천의 범려, 오나라 합려의 오자서, 진시황의 이사, 촉나라 유비의 제갈량, 당태중 이세민의 위징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가운데 중국 제일의 책사를 꼽히는 이는 단연 항우와의 ‘초한 전쟁’(楚漢 戰爭) 끝에 천하를 평정한 한(漢) 고조 유방을 도운 장량(張良)이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뛰어난 전략가’나 ‘최고의 참모’라는 뜻의 ‘장자방’이란 단어는 장량의 자(字)인 ‘자방’(子房)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삼국시대 조조는 자신의 책사 순욱을 보고 “나의 자방(장자방)이다”고 칭찬했으며, 조선 시대 정도전은 스스로를 ‘조선의 장자방’이라 여기기도 했다.

한나라 시조 유방이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리를 결정지었다”고 극찬한 장량(?~기원전 186)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본래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재상을 지냈다.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이 멸망하자 복수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자객을 고용,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저격했으나 실패하고 도망쳐 이름을 숨기고 살았다.

은둔 당시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으로부터 ‘삼략’(三略)이라는 병법서를 전해받은 일화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삼략’은 문왕과 무왕을 도와 폭군 주왕의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강태공(姜太公)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강태공이 지은 병법서인 ‘육도’(六韜)와 함께 ‘육도삼략’(六韜三略)으로 불린다.

장량은 어느 날 다리 위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은 느닷없이 다리 밑으로 신발을 던지고 주워오라고 했다. 장량은 공손히 신발을 주워드렸으며 몇번의 시험을 더 거친 끝에 노인으로부터 ‘삼략’을 전수받아 최고의 전략가로 거듭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량의 계책은 여러 차례 빛을 발하면서 군사적 측면에서 항우에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홍문의 연’(鴻門之宴)은 그 대표적 예이다. 기원전 206년, 천하 패권을 다투던 유방은 항우의 연회 초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 홍문이라는 곳에서 만난다. 홍문은 당시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린퉁구(臨潼區) 신펑진(新豊鎭)이다.

항우는 유방을 위한 연회라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유방을 제거하려는 자리였다. 항우의 책사 범증은 유방이 장차 항우와 천하를 다툴 위험한 인물임을 간파하고, 수하에게 연회 도중 칼춤을 추며 유방을 베라는 ‘항장무검’(項莊舞劍)의 계책을 세웠다. 이를 미리 간파한 장량은 위기에 빠진 유방을 구하기 위해 무장 번쾌를 불러들여 시간을 벌고, 항우의 자만심을 이용해 유방이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걀국 항우는 유방을 죽일 기회를 놓쳤고, 유방은 목숨을 건져 훗날 해하 전투(垓下之戰)에서 항우를 꺾고 한나라를 건국하며 천하를 거머쥐게 된다.

기원전 202년 해하 전투는 유방의 책사 장량과 명장 한신(韓信)의 치밀한 전략이 빛을 발한 싸움이었다. 한신이 지휘하는 한나라 군대는 항우의 군대를 열 겹으로 겹겹이 에워싼 ‘십면매복’(十面埋伏)을 통해 유방의 초군을 고립시켜 승리를 일궈냈다. 장량은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심리전을 활용했다. 포위된 초나라 군사들이 밤중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초나라) 노래를 듣고 전의를 상실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것이다.

전투에서 패배한 항우는 명마 오추마(烏騅馬)를 타고 탈출했으나 오강(烏江)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길었던 초한지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항우가 자결 직전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한탄하며 지은 ‘해하가’(垓下歌)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시다.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건만)

時不利兮騅不逝 (시불리혜추불서·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우야, 우야,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우(虞)는 항우가 끝까지 곁에 두었던 연인 우미인이다. 항우는 이 시를 통해 천하를 호령하던 자신의 기개와 천운이 다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심경을 노래했다.

장량은 행정의 소하(蕭何), 군사의 한신과 함께 ‘한초삼걸’(漢初三傑)로 불린다. 유방은 자신이 이들보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인재를 잘 썼기에 천하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는 법. 한나라가 세워진 후 유방은 한신과 장량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신은 군사적으로 유방과 맞서다 미양궁에서 최후를 맞는다. 유방에게 붙잡힌 한신은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를 삶는구나”(狡兔死 走狗烹·교토사 주구팽)”라며 신세를 한탄했다. 유명한 ‘토사구팽’(兔死狗烹)이다.

하지만 장량은 이런 토사구팽의 위험을 예견하고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나 산속으로 은둔해 여생을 편안하게 지냈다. 인생사의 앞길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던 셈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장가계(張家界)는 ‘장(張)씨 문중의 경계(땅)’라는 뜻으로, 장량이 이곳에 숨어 살며 후손들이 번성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장량은 유방의 의심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장가계의 유명 관광지인 천문산(天門山)과 원가계 인근에는 장량의 묘라고 전해지는 유적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서 장량을 탁월한 식견을 지닌 ‘하늘이 내린 참모’라 평했다. 장량은 유후(留侯)라고 도 불리는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를 ‘유(留)’라는 지역의 제후(侯)로 봉했기 때문이다.

유방은 천하 통일후 장량에게 “그대의 고향인 제나라 땅에서 3만 가구(3만 호)를 봉지로 택하라”며 엄청난 특혜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량은 정중히 거절하며 “제가 처음 폐하를 만난 곳이 바로 유(留) 땅입니다. 하늘이 저를 폐하께 보낸 곳이니, 그곳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세력이 클수록 유방의 의심을 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현명한 선택이 평안한 삶의 만년을 가능케 했다.

장량 초상화 [나무위키]
장량 초상화 [나무위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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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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