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4원 상승한 1530.1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주간 거래(오전 9시~오후 3시 30분) 종가가 1530원을 돌파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9일(1549원) 이후 17년만이다. 원화 가치가 급락한 것으로, 이런 추세대로라면 1600원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조차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은 이제 뉴노멀”로 과거의 1200원대 환율로 회귀하기는 상당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은 외국돈과 비교한 우리 돈의 가치다. 이렇게 원화 가치 하락폭이 다른 주요국 통화보다도 더 큰 것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란 전쟁 전후로 국내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무섭게 빠져나가면서 환율 급등을 초래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등으로 대표되는 근로자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정책이 한국 투자의 매력을 잃게 하는 가운데, 추경 등 정부의 돈풀기 또한 원화 가치의 증발을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현재 환율 레벨(수준)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일단 환율이 어느 정도 리스크(위험)를 수용할 수 있는지 보는 만큼 그런 면에서 큰 우려는 없다”고 밝혔다. 현 환율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 총재 후보의 이런 발언은 원화 약세를 더 키웠다. 한국은행법 1조 1항은 한은의 책무로 물가 안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2항에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해 금융안정에도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물가 안정은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통화 가치의 안정으로, 원화라는 돈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한은의 최대 과제라는 뜻이다. 원화 가치는 같은 액면가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물가)과, 외국돈과의 교환비율(환율)로 측정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다시피 물가, 특히 생활물가는 예전의 두세 배 가량 오른 실정이고, 달러당 1100원에서 120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1530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에 큰 우려는 없다”는 신 한은 총재 후보의 발언은 너무 안이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현 이창용 총재는 재임 기간 중 물가는 폭등하고 성장률은 바닥을 기었는데도 말로만 물가 안정과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을 외친 감이 적지 않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시중 통화량을 억제하려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관의 최고 수장이 아닌, 마치 경제 평론가처럼 ‘감 놔라 대추 놔라’라고 참견만 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성장·물가·국제수지라는 거시경제의 세 목표 사이에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가 존재한다. 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기회비용으로 불가피하게 다른 목표들의 희생은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총재는 마치 마법의 지팡이라도 가진 듯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그때 그때 줄타는 모습을 보이면서 원화 가치의 추락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신 총재 후보는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고로 치솟은 날 “환율에 큰 우려는 없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과 자세로는 세계질서의 격변속 요동치는 우리 경제를 결코 안정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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