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합성수지 등 원료

가격 올해 초보다 두배 급증

LG화학·여천NCC 등 셧다운

원가 압박 넘어 수급차질도

중동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한국 경제가 ‘나프타 포비아(공포)’에 휩싸였다. 석유화학 업계의 연쇄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에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비상 상황이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을 만드는 에틸렌의 원재료로 사실상 전 산업군에서 쓰이는 ‘산업의 쌀’고 불린다. 자동차·전자·조선 등 제조업종은 물론 비닐·플라스틱 등을 주로 사용하는 소비재 업종까지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2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미터톤(MT) 당 1068달러로 지난 1월 1일(537달러) 대비 두 배가량 뛰었다. 중동 사태 직전인 지난달 26일만 해도 635달러를 유지했지만 이후 이달 2일 721달러, 10일 859달러로 지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나프타 가격 뛰면서 이를 사용하는 국내 산업계는 원가 부담이 대폭 커졌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하면 다행이지만, 중동사태 장기화에 원유 공급망이 막히면서 구하기도 벅찬 처지다. 대기업은 그나마 해외 생산이나 대체 공급망을 활용해 버틸 수 있지만, 코로나 시국을 버티면서 이미 체력이 약해진 중소기업들은 당장 공장 문을 받아야 할 처지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대표적으로 자동차·부품업계의 경우 내외장재 전반에 에틸렌 기반의 플라스틱, 합성고무 등이 사용되는 만큼 비상이 걸렸다. 에틸렌은 나프타를 원료로 만드는 석유화학 기초 소재다.

부품업계는 원가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당장은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 수급 차질이 불가피하다.

에틸렌을 소재로 만드는 제품은 NVH(소음·진동) 개선을 위한 차음·흡음재, 시트커버, 각종 내장 소재 등으로 다양하다. 엔진룸 내부 호스, 워셔액 통, 냉각수 보조 탱크 등 주요 부품에 에틸렌 기반 소재가 사용되며, 타이어 제작에도 쓰인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플라스틱을 포함해 에틸렌 기반 소재가 대거 사용되는 전자업계도 원가 상승과 납기 지연 가능성이 거론된다.

조선업계의 경우 에틸렌 재고가 지난주를 기준으로 이르면 1주, 길게는 1개월 안에 소진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지난 15일 화학협회와 조선협회간 화상 협의를 주선해 에틸렌 단기 물량 공급 방안을 마련하며 우선 진화에 나선 상황이다.

화장품·패션·식품 등 소비재업종도 당장은 재고 확보로 대응하고 있지만, 사태 장기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소업체의 경우 원가 상승 압박만으로도 타격이 적지 않다. 일부 기업은 재고를 확보해 단기 대응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중소 브랜드를 중심으로 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장재 부족이 장기화할 경우 K뷰티 성장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식품 등 소비제 제조업체들은 원가 상승을 감안해 가격을 올려야 할 처지지만 정부가 물가 상승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터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납품단가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비용 부담을 자체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건축물에 설치되는 배관과 창호 등 주요 자재는 폴리염화비닐(PVC) 등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하며, 스티로폼과 같은 단열재도 에틸렌을 주원료로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특정 국가나 개별 설비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전역의 나프타 기반 에틸렌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동시다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 등 동남아 주요국들도 감산, 셧다운, 불가항력 선언 등에 나섰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는 유가 상승을 넘어 에틸렌 밸류체인 전반의 실물 운영을 흔드는 공급 충격으로 전이되고 있다”며 “한국은 중동 의존도가 높은 나프타 조달 구조를 갖고 있어 공급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직 전면 셧다운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공급망 붕괴 가능성을 시장에 사전 통지하는 단계에 가깝다”면서도 “경고의 빈도와 범위를 감안하면 시장은 이미 일시적 차질이 아니라 실질적 공급 축소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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