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시행된 재판소원이 벌써부터 심각한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줘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범법자들이 ‘형 집행정지’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우려대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기능, ‘끝없는 소송’의 문을 열어 ‘범죄자들의 전성시대’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16일 헌재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 시행 첫날인 12일부터 15일까지 전자접수 31건, 방문접수 5건, 우편접수 8건 등 총 44건의 재판소원 심판 청구가 접수됐다. 대부분 대법원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다. 하루에 대략 10여건꼴로 접수된 셈이다. 헌재는 1년에 재판소원 청구건수가 1만∼1만5000건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헌법소원 사건 3092건의 3~5배 수준이다.
청구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본래의 기본권 구제라는 취지보다는 확정된 형량이나 징계 처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은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5500만원을 갈취한 공갈 혐의로 징역 3년의 원심이 확정됐으나 증거수집이 위법이라며 재판소원 절차에 착수했다. 호텔에서 여성 성추행 혐의로 일부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도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박사방’ 사건으로 3개 재판에서 징역 47년 4개월을 확정받은 조주빈도 ‘옥중 블로그’에 재판소원제에 찬성한다는 글을 올렸다. 정치권도 재판소원을 악용해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움직임이 감지된다. 사기 대출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된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본권을 간과한 부분이 있다”며 헌재 판단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해 유죄를 확정받은 장영하 국민의힘 성남시 수정구 당협위원장도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장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국제마피아파와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고 주장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 지난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이렇게 재판소원이 폭주하면 헌재에 과부하가 걸려 재판이 최종 확정되는 날짜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해자들은 재판소원으로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 한편으로 1·2·3심에 관여한 판사·검사 및 경찰 등을 법왜곡제로 고소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들로선 끝없는 ‘도돌이 재판’으로 헌법 제27조 제3항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으며, 더 오랜 기간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더구나 재판소원은 심판 청구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감안할때 권력자와 사회적 강자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마저 침해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밀어붙인 ‘사법 3법’의 부작용이 심각하다.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가 엉망이 돼가고 있는데 여당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이를 방치할건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