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제유가와 美 휘발유 가격 급등에 궁지

승리 선언 접고 일단 호르무즈 통행 확보에 사활

미중 정상회담 연기 카드로 중국 군함 파견 압박

中 비롯 파병 요청받은 국가들 결정에 시선 집중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김해공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김해공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28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수뇌부 48명을 폭살시키며 전격적으로 시작된 이번 중동전이 개전 3주째를 맞아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단기 승전 자신감과 달리 이란의 강력한 항전이 이어지면서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주요 군사기지가 파괴되는 등 미국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했던 이란의 정권 교체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고, 핵심 목표였던 핵물질 제거 역시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황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시나리오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이란혁명수비대가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글로벌 석유 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유가는 한때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했고 현재 1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가 150달러 이상으로 폭등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율이 매우 미미한 미국조차도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인명 피해와 경제적 타격이 가시화되자 미국 내부와 국제사회에서는 반전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이란의 주요 시설 파괴와 수뇌부 제거를 근거로 "전쟁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했다"고 자평하며 조기 종전의 불을 지피는 듯했다. 시장에서는 그가 '셀프 승리 선언'을 하고 발을 뺄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그러나 1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기대를 일축하는 반전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이날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에서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전용기 내에서 승리를 선언할 준비가 됐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단호히 답했다. 이어 "나는 단지 그들이 몰살당했다(decimated)고 말할 뿐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철수해도 재건에 10년 이상 걸리겠지만, 나는 여전히 승리를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발언 변화의 이면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뜨거운 감자'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의 통행권 확보 없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철군할 경우, 고유가로 인한 경제 파멸을 방치했다는 정치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이든 전쟁 지속이든 일단 해협 통행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지목해 호르무즈 상선 호위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구한 데 이어, 다시 요구 대상국을 7개국으로 늘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달 말이나 내달 초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 카드까지 동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의 90%를 얻고 있어 반드시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이 호송 작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을 연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2주는 긴 시간이며, 회담이 연기될 수도 있다"고 언급해 중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미중 양국은 현재 파리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만나 의제를 조율 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호르무즈 협조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처럼 내걸면서 협상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수혜자들이 그곳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것은 당연하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향해서도 "우리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었음에도 도왔던 것처럼, 이제 그들이 우리를 도울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특히 영국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된 동맹이라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오지 않다가 우리가 위협을 제거하니 배 두 척을 보내겠다고 한다"며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연합 전력 구성에 대해 "일부 국가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국명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참여 여부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며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보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협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진단하며, 해상 연합군이 구성되는 대로 호르무즈에서의 작전이 곧바로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중동전의 향방은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트럼프의 군함 파견 요구에 어떻게 응하느냐에 어느 정도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특히 중국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다급한 요청을 수용해 호르무즈의 총대를 멜 것인지, 아니면 정상회담 무산 위험을 감수하고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인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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