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페르시아만 전역 공격 나서

태국·일본 등 외국선적 4척 타격

美, 부상자 늘며 정치 부담 커져

군사압박·종전 메시지 병행 선택

해협 봉쇄 장기화땐 소모전 우려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로이터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13일째로 접어들면서 큰 줄기는 종전으로 가는 듯하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미국은 겉으로는 강경 군사작전을 이어가면서도 물밑에서는 종전 출구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란은 해상 공격 범위를 확대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11일(현지시간) 이란은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선박 공격을 이어가며 전선을 넓혔다.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이라크 남부 바스라 항구 인근 영해에 정박 중이던 해외 유조선 2척이 폭발물을 실은 보트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고, 외국인 승조원 1명이 숨졌다. 이라크 항만 당국은 승무원 25명을 구조했으며 현재 바스라 원유 항만 운영이 전면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란은 그동안 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겨냥해왔지만 최근에는 페르시아만 전역으로 공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도 이스라엘·태국·일본 선적 등 외국 선박 4척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는 국영 TV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동맹국에 소속됐거나 이들의 석유 화물을 실은 선박은 정당한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측은 미국과 동맹국 선박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겠다며 "유가 200달러를 각오하라"고 위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공격 확대는 세계 경제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를 흔들어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위협에 이어 페르시아만 내부 항만과 유조선까지 공격하면서 중동 원유 수출을 사실상 마비시키려는 의도다. CNN은 이날 오만 살랄라 항구의 대형 연료 저장 탱크가 이란제 샤헤드 드론으로 보이는 물체의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이라크 남부 마눈 유전도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란의 공격 확대는 국제 유가를 다시 자극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국제 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은 한국시간 12일 오후 장중 배럴당 100.29달러에 거래되며 다시 100달러선을 넘어섰다. 이는 전날 종가보다 약 9% 상승한 수준이다. 같은 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94달러 안팎까지 급등했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들이 총 4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IEA 역사상 최대 규모 방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방출량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동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비축유 방출이 장기적으로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미국은 군사적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종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켄터키주 히브런에서 연설하며 "우리가 이겼다"고 주장하면서도 "임무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공격할 표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며 "내가 끝나길 원하면 언제든 전쟁은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한 동시에, 일종의 '승리 선언형 출구전략'을 염두에 둔 메시지로 해석된다. 백악관도 종전 조건을 다소 완화하는 분위기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이 반드시 항복을 선언해야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목표가 달성됐다고 판단하면 군사작전은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이처럼 미국이 종전 문턱을 낮추는 배경에는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전쟁부는 이번 전쟁에서 미군 7명이 사망하고 약 140명이 부상했다고 처음 공식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국방부가 부상자 규모 공개를 늦춘 것을 두고 의회 내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도 부담이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미군의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여기에 유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국내 정치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겉으로는 강력한 공습을 이어가면서도 물밑에서는 종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부 외신은 미국이 제3국을 통해 이란 측에 종전 의사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추가 공격을 자제하는 대신 긴장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쟁의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해협의 안전이다. 미국이 해협 안전을 확보한 뒤 '임무 완료'를 선언할 경우 전쟁을 마무리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란이 해협 봉쇄와 해상 공격을 계속 확대한다면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종전을 선언할 명분이 그만큼 줄어든다. 현재로서는 강경 대응과 출구 모색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국면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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