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경영간섭 문제로 정면 충돌했던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의 연임이 무산됐다. 박 대표는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종료 직후 창업자 일가 모녀 측 지지를 받은 전문경영인이다. 박 대표가 대주주와의 갈등으로 3년만에 물러나게 되면서 신 회장의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사이언스는 12일 이사회를 열고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한미약품 이사 5명 중 박 대표를 비롯한 4명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새 사내이사로 내정된 사람은 증권·투자업계를 거쳐 종근당홀딩스 대표를 지낸 황상연(사진)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부문 대표다. 오는 31일 열릴 한미약품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되면 한미약품 창립이래 처음으로 외부 영입인사가 대표를 맡게 된다.
황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LG화학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금융 쪽으로 길을 바꿔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을 지낸 뒤 종근당홀딩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동안 한미약품의 대표는 모두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 생전에 입사해 내부 승진한 전문경영인이었다. 박 대표는 지난 1993년 연구원으로 입사해 한미약품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정통 ‘한미맨’이다. 2023년 3월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한미약품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이번 한미약품 대표 교체는 대주주인 신 회장과 전문경영인인 박 대표가 충돌한 결과다. 2024년 창업자 일가는 모녀와 형제로 나뉘어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당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맡아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박 대표를 지지했다. 당시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최종적으로 모녀의 손을 들어주며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된 바 있다.
신 회장은 당시 모녀 측과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지분 매각 시 사전 협의해야 하고 우선매수권을 보장하며, 이를 위반하면 600억원의 위약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한양정밀이 보유 지분을 담보로 380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면서 계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졌다. 모녀 측은 사실상 지분 처분과 다름없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신 회장 자택과 지분 일부를 가압류했다.
이후 박 대표가 “신 회장이 성추행 임원을 비호하고 원료의약품 교체 등 부당한 경영간섭을 했다”며 대화 녹음 파일을 언론에 공개해 신 회장과 박 대표의 충돌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신 회장은 “지주사의 기타비상무이사의 자격으로 한미약품 대표를 상대로 의견을 개진한 것일 뿐, 경영간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송 회장은 “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에서는 박 대표를 송 회장 쪽 사람으로 분류한다. 황 대표는 신 회장과 모녀 중 어느 쪽에서 추천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만약 한미약품 주요 주주 중 황 대표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쪽이 있을 경우 31일 주총에서 표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재점화를 의미한다.
한편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최대주주로 지분 41.42%를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은 개인 지분 7.72%와 한양정밀 지분 0.9%를 합쳐 총 8.67%의 한미약품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 역시 신 회장으로 개인과 회사 지분을 합쳐 29.83%를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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