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네타냐후의 전쟁이다.”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을 이끌었던 투르키 알파이살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이번 이란 전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불씨는 미국도 이란도 아닌, 이스라엘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래전부터 미국을 이란과의 충돌에 끌어들이려 했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기습으로 촉발된 ‘12일 전쟁’이었다. 네타냐후는 ‘12일 전쟁’을 두고 “반쪽짜리 승리였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스라엘의 힘만으로는 이란 체제를 전복하기 어렵다는게 판명됐다. 결국 해답은 하나였다. 미국이 나서야하는 것이다.
이에 네타냐후의 집요한 설득전이 시작됐다. 네타냐후는 지난해 12월 말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자택을 찾았다. 회동이 끝난 후 트럼프는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이 실패할 경우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네타냐후의 외교적 승리였다.
올해 2월 11일 이뤄진 백악관 회동에서도 네타냐후는 트럼프를 설득했다. 이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이란 정권이 급격히 약화됐다며 지금이야말로 공격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논리였다.
이어 전쟁 발발 닷새 전, 네타냐후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했다.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연다면서 “단 한 번의 대규모 공습으로 지도부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미 중앙정보국(CIA)에 정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고, 맞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그리고 약 10시간 뒤 공습이 시작됐다.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거처는 완전히 파괴됐고 그는 죽었다. 전쟁은 현실이 됐다.
물론 트럼프가 네타냐후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관세 정책 여파로 미국 내 물가가 상승하고 있고, 강경한 반이민 정책은 논란을 낳았다. 게다가 ‘엡스타인 스캔들‘ 파장은 커지고 있었다. 엡스타인이 주고받은 이메일 절반에서 트럼프의 이름이 나오면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터졌다. 특히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주선으로 13~15세로 추정되는 소녀와 구강성교를 시도하다 소녀가 저항하자 주먹으로 때렸다는 진술까지 나오면서 파문은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잘못되면 소아성애자가 될 판이었다.
이렇게 각종 위기 요인과 논란이 겹치면서 트럼프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이러다간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 갔다.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정치적 돌파구로 해외 군사 행동을 선택했다. 자신감이 있었다. 지난 1월 트럼프는 특수부대를 베네수엘라에 투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하는 짜릿한 순간을 맛봤다. ‘승부수’가 성공한 것이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이번에 이란 체제를 바꾼다면 이전 어떤 미국 대통령도 얻지 못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트럼프 주변의 참모들은 전쟁에 부정적이었다. 미국 정보기관도 이런 입장을 공유했다. 국가정보위원회는 전쟁 일주일 전 ‘이란 정권 교체는 지상군 투입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참모들이 다수 있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존 켈리 비서실장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이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통령의 뜻에 맞추는 ‘예스맨’들만 있다. 그들은 트럼프의 결정을 따랐다.
전쟁은 터졌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이란 내부에서 정권 붕괴나 대중 봉기의 조짐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시 상황 속에서 체제 결속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란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선출하고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전황이 장기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트럼프는 이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내 여론도 냉담하다. 로이터 통신이 이란 공습이 시작된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실시해 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이란 공격에 대한 지지는 27%에 불과했다. 미국인 넷 중 한 명꼴이다. 이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트럼프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전쟁에 뛰어든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네타냐후는 웃고 있다. 이스라엘 민간 조사기관인 ‘민주주의연구소’가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유대계 응답자의 93%가 이란 군사 작전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전쟁이 네타냐후에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된 것이다. 네타냐후는 기세를 몰아 조기 총선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정권 연장을 노리고 있다. 결국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네타냐후였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정치적 승패는 이미 갈리는 분위기다. 트럼프에겐 부담만 남았고, 네타냐후에게는 기회가 열렸다. 알파이살 왕자의 말마따나 이번 전쟁은 ‘네타냐후의 전쟁’이었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