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소속 357곳 참여… 건설·제조 등 전방위 확산
콜센터·청소·택배 등 서비스 업종 하청노조도 참여
노동위 교섭단위 분리 신청 31건… 구조 변화 예고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부터 하청 노동조합들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대거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 시행 하루 만에 수백 개 하청 노조가 교섭 절차에 나서면서 원·하청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렇잖아도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해 국제유가와 환율 등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와중에 하청업체들의 단체교섭까지 쏟아지면서 기업 경영진은 더 골치아프게 됐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처음 시행된 전날 오후 8시 기준 집계 결과, 하청노조 407곳이 원청 사업장 221곳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해당 노조에 소속된 조합원 규모는 총 8만1600명 수준이다.
노동부는 이번 교섭 요구가 개정 법 시행 직후 이뤄진 첫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노사 관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초기 흐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실제 교섭 절차가 본격화된 사업장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다. 원청 사업장 221곳 가운데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한화오션과 포스코 등을 포함해 5곳에 그쳤다. 이는 전체의 약 2.3% 수준이다.
교섭 요구를 제기한 하청 노조의 상당수는 민주노총 소속으로 나타났다. 전체 407개 하청 노조 가운데 357곳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조직이다.
산별노조별로 보면 금속노조 소속 하청노조 36곳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한국지엠 등 16개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이들 노조의 조합원 수는 약 9700명이다.
건설업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이어졌다. 건설산업연맹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한 원청 기업 90곳을 대상으로 단체교섭 요구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교섭 절차에 나섰다. 은행권 콜센터 노동자와 대학 청소노동자, 지방자치단체 생활폐기물 위탁업체 근로자, 백화점 및 면세점 종사자, 택배업 종사자, 우정사업본부 관련 노동자 등 여러 업종에서 교섭 요구가 제기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노총 산하 조직의 참여도 일부 확인됐다. 한국노총 소속 하청노조 42곳은 포스코, 쿠팡로지틱스서비스(CLS), 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9개 원청 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했다.
독립 노조도 움직임을 보였다. 서울시와 경기도, 한국공항공사 등과 관련된 미가맹 하청노조에서도 약 5100명의 조합원이 교섭 요구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원청 기업 가운데 일부는 법적 절차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한화오션과 포스코, 쿠팡CLS, 부산교통공사, 화성시 등 5곳은 교섭 요구가 접수된 당일 해당 사실을 공고했다. 이는 교섭 요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움직임을 노사 간 대화를 시작하는 단계로 평가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교섭 요구를 공고했다는 것은 교섭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관련 법 절차를 따르겠다는 의사로 볼 수 있다"며 "상생 교섭을 위한 첫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교섭구조 조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날 하청노조 등이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총 31건으로 집계됐다.
교섭단위 분리는 하나의 사업장에서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이 별도의 교섭 단위를 구성하도록 하는 절차다. 노동위원회는 근로조건의 차이와 고용 형태, 기존 교섭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리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노동부는 향후 개별 교섭 사안에서 원청의 사용자 지위 인정 여부 등을 두고 해석이 필요한 경우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단체교섭 판단지원 위원회'를 통해 법률적 판단과 해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제기되는 교섭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 있는 사용자로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다만 임금 문제의 경우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노동부는 하청 근로자의 임금이 원청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되거나 실질적인 영향력이 행사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교섭 의제로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임금이 일반적으로 근로 제공의 대가이기 때문에 원청 사용자에게 단체교섭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지배·결정 관계가 확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이번 상황을 개정 법 시행 이후 초기 정착 단계로 평가했다. 김 장관은 "교섭 요구 공고와 교섭단위 분리 신청 등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노사가 교섭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도 개정 노조법이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현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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