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본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로가이’(老害)다. 직역하면 ‘노인으로 인한 폐해’.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세대 비하라기보다 오늘날 일본 사회의 구조적 답답함이 응축된 신호에 가깝다.
몇 해 전 도쿄의 한 스타트업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전체 직원이 원격 협업 툴로 일하는 회사였는데, 새로 영입된 외부 고문이 첫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보고는 출력해서 도장 찍어 가져오세요.” 사무실에 프린터도, 도장도 없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본이 안 돼 있다”고 핀잔을 줬다. 이 장면이 SNS에 공유되며 붙은 해시태그가 바로 ‘로가이’였다. 젊은 직원들 입장에서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을 전제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아날로그 방식을 절대 기준으로 강요하는 태도였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 지방자치단체 청년 간담회에서 20대 참가자가 “월세 부담 때문에 저축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하자, 참석한 고령 의원이 “젊을 때는 고생 좀 해야 사람 된다”고 답한 사례가 화제가 됐다. 온라인 댓글에는 “집값이 이렇게 오른 시대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청년층이 체감하는 경제 현실과 정책 결정권자의 인식 사이의 간극이 ‘로가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기업 현장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이 회의 시간을 줄이자고 제안하며 협업 툴을 활용한 비동기 보고 방식을 설명했지만, 부장급 관리자는 “회의는 얼굴 보고해야 책임감이 생긴다”며 거절했다. 결국 하루 세 시간 넘는 대면 회의가 유지됐고,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업무 효율을 깎아먹는 로가이 문화”라는 말이 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선배 개인을 미워하기보다, 변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조직 구조 전체를 비판하는데 이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또 하나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한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령의 상점회장이 “우리 동네 가게는 전통이 중요하다”며 카드와 QR 결제를 거부한 일이다. 젊은 주민과 관광객들은 현금을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렸고,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이후 상인회 회의에서 “요즘 손님들은 너무 편한 것만 찾는다”는 푸념이 나왔고, 이 장면이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유되며 ‘손님을 내쫓는 로가이 경영’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선택이 결국 지역 경제에도 부담이 되는 단면이었다.
경제구조 역시 세대 갈등에 불을 붙인다. 연금과 의료 같은 사회보장 지출은 늘어나는데, 그 재원을 더 부담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청년·중년층이다. 취업난과 비정규직 확대 속에서 미래가 불안한 세대에게 “우리는 더 힘들었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단절의 신호로 들린다. 그래서 ‘로가이’는 개인의 성격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결정권은 위 세대가 쥐고, 부담은 아래 세대가 지는 구조’에 대한 불만의 라벨이 된다.
물론 이 단어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모든 고령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대화의 통로는 더 좁아진다. 실제로 일본 사회를 떠받쳐온 기술, 현장 경험, 지역 네트워크는 고령 세대의 자산이기도 하다. 문제는 세대 그 자체가 아니라, 권한은 유지하면서 변화의 책임은 회피하는 태도다.
그래서 ‘로가이’의 유행은 역설적으로 기회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가 공개적으로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세대가 과거의 성공 공식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가 가진 디지털 감각과 속도를 받아들일 때 이 단어는 힘을 잃을 것이다.
‘로가이’는 일본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자조이자, 동시에 바뀌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는 세대 공동의 경고음이다. 이런 풍경은 대한민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연공서열, 부동산 세대 격차, 디지털 전환 갈등 등에서 비슷한 긴장이 반복된다. 결국 세대 갈등을 키우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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