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보고에 두시간도 못자
석윳값 하락 불구 불확실성 여전
사업계획 유지 속 연간 전략 수정
“급변하는 중동 상황에 국제유가, 환율, 주가까지 요동을 치고 있으니 하루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최고경영자(CEO)에게 중동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데다, 조만간 있을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질문에도 답해야 하는 상황이라 매일 시나리오를 짜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 임원은 10일 이렇게 하소연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사태가 2주일째 접어든 가운데, 이달 정기주총을 앞두고 기업들도 혼란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말하자 국제유가가 하루 만에 20% 이상 급락했지만, 기업들은 유가가 다시 치솟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서부텍사스유(WTI)는 간밤 뉴욕증시 마감 무렵 이날 종가 대비 6.56% 하락한 배럴당 84.94달러, 브렌트유는 4.61% 내린 배럴당 88.42달러 각각 거래됐다.
전날 WTI는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오일쇼크’ 우려를 키웠지만 하루 만에 큰 폭으로 하락하며 안정세로 돌아섰다. 유가가 럭비공처럼 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유가가 큰 폭 하락했지만 중동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경우 언제든지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 혁명수비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전쟁의 종식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혼란을 더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G7에서 비축유를 풀겠다는 언급과 트럼프의 ‘전쟁은 끝날 것 같다’는 한 마디에 유가가 급락한 것”이라며 “일희일비보다 침착하게 중동 정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업들은 올해 사업 계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단 이달 중동 사태에 올해 시장 상황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유가에 따라 환율도 요동치고 있는데, 수출 중심의 일부 대기업은 환율에 따라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주총을 앞둔 상황에서 당장 사업 계획을 수정하기도 어렵다. 유가 체크, 전황 점검 등에 기업 임원진들은 물론 CEO까지 밤잠을 줄여가며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기업 임원은 “주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적 목표치나 투자 계획 등을 당장 수정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중동 사태에 그 동안 내세웠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도 무용지물이 돼 주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골머리”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올 한해를 놓고 봤을 때는 사업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부분의 목소리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들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을 인용해 올 초까지 이어졌던 국제유가 60달러 선을 전제로 경영계획을 짰는데, 중동 사태가 장기화 되면 이는 휴지조각이 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생산 비용은 0.38%, 이 중 제조업은 0.68% 각각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 수입단가가 3.15% 오를 것으로 분석돼 원가 부담이 커진 상태다.
여기에 중동 지역은 ‘글로벌 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남반구 지역 신흥 개발도상국)의 핵심 시장이어서 해외 사업 전략도 다시 짜야할 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거점을 둔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등 주요 대기업들은 현지 임직원들을 대피 시켰으며 현지 영업망도 사실상 ‘올 스톱’ 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유가 상승의 이중고를 겪는 해운업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유류할증료가 잘 징수된다면 유가 상승분을 완화하는 등 영향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운임이 올라 득이 된다한들 이번 사태는 기회로 작용하긴 어렵다. 시장 상황에 맞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동 전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충격을 최소화 하고 내부를 다지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라며 “과거 오일쇼크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산업 구조를 고도화시키고 국가 체질을 개선한 경험이 있다. 기업들의 견고한 실적을 믿고 경제의 펀더멘털을 지키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장우진·임재섭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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