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은폐 첫 제재
파라시스 배터리 숨기고 CATL 탑재처럼 판매
부당 고객유인 첫 4% 과징금 적용… 벤츠·독일 본사 고발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된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사실을 숨긴 채 소비자를 부당 유인한 메르세데스 벤츠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덜미가 잡혔다.
공정위는 10일 EQE·EQS 일부 모델의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사실을 숨긴 벤츠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했다.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누락·은폐해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다.
공정위는 2024년 8월 인천 청라지구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해당 차량 배터리가 CATL이 아닌 파라시스 제품으로 확인되면서 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화재로 주민 수십명이 대피하고 차량 100여대가 전소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는 EQE·EQS 전기차 상당수 모델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지만 이를 숨기고, 모든 차량에 CATL 배터리가 들어가는 것처럼 '차량 판매지침'을 만들어 딜러사에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지침에는 파라시스 언급은 전혀 없고 CATL 배터리 셀의 장점과 우수성만 담겼다. 또 소비자 질의가 있을 경우 CATL의 기술력을 강조해 영업하라고 안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라시스는 벤츠 EQ 전기차가 국내 출시되기 직전인 2021년 3월 중국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된 이력이 있다.
벤츠코리아는 판매지침을 딜러사에 내려보내 영업 과정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교육자료로도 사용했다. 딜러사들은 계약에 따라 벤츠 교육을 이수해야 했고, 벤츠 기준에 맞지 않는 광고나 홍보물을 임의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벤츠코리아는 판매지침 주요 내용을 독일 본사에 보고하고, 배터리 관련 내용 보완도 요청했다. 독일 본사는 해당 지침을 우수 사례로 선정해 다른 국가에 공유하고, 내부 교육 플랫폼 사용도 승인하는 등 법 위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딜러들은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된 사실을 모른 채 CATL 배터리가 들어간 것으로 안내하며 차량을 판매했다. 소비자들은 딜러 설명만 믿고 자신이 구매한 차량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고 차량을 구매했다.
벤츠는 판매지침을 내부 시스템에 게시한 2023년 6월 8일부터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공개하기 전날인 2024년 8월 12일까지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된 전기차 약 3000대를 판매했다. 판매금액은 281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가 국민 생명과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해 최고 기준율인 4%를 적용했다. 현행 법령상 불공정거래 행위에는 관련 매출액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부당 고객 유인 행위에 4% 과징금 부과가 적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가 이번 법 위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고 벤츠코리아와 함께 검찰에 고발했다. 소비자를 기만한 구체적 방식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황원철 공정위 상임위원은 "벤츠가 심의 과정에서 주로 주장한 내용은 벤츠코리아가 판매지침을 만든 부분과 관련해 당시 셀 제조사가 어디인지 몰랐다는 것이었다"며 "확보한 증거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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