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50달러 공포에… 값싼 주유소로 차량 몰려
이라크·쿠웨이트 감산 선언… 사우디·UAE 저장 한계
두바이유 현물가격 100달러 돌파, 브랜트유 등도 임박
정유사들도 TF 가동… 李대통령, 9일 비상회의 주재
서울 구로구 개봉동 GS칼텍스 직영 개봉동주유소는 8일 하루종일 차량들의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주유소 앞 1개 차선을 막을 정도로 줄이 길어지자 한때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마치 토요일 수도권 로또 명당 매장 입구를 보는 듯 했다.
이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 가격은 이날 리터(ℓ) 당 1745원으로, 서울에서 가장 싼 편이다. 밀려오는 차량에 재고가 빠르게 동나면서 결국 이 주유소는 일부 휘발유 주유기에 ‘재고 소진’이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휘발유 차주들은 발길을 돌렸고, 일부 경유차만 아직 소진되지 않은 주유구를 찾아 기름을 넣었다. 같은 날 인천 시내의 한 주유소에는 아예 입구에 ‘휘발유 매진’이라는 푯말을 놓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는 이처럼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미리 기름을 채워넣으려는 차량들의 행렬이 주말 내내 줄을 이었다.
국제유가가 배럴 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면서 조금이라도 쌀 때 기름을 넣겠다는 ‘주유 전쟁’이 벌어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작전 기간이 4주가 될 수도 있고 6주나 8주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지난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전쟁으로 모든 걸프 해역 에너지 수출 업체가 몇 주 안으로 생산을 중단하고 배럴 당 150달러 수준으로 유가가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고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지난 6일 이미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브랜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 역시 90달러를 넘어 100달러에 근접했다.
주요 중동 산유국들은 수출길이 막히면서 불가피한 감산을 하고 있다.
7일(현지 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쿠웨이트의 국영 석유회사 KPC는 이날 “이란의 계속된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항에 대한 위협을 고려해 예방적 조치로서 원유와 정제 처리량을 감축한다”고 밝혔다.
KPC는 계약상 의무 이행을 면제받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이라크도 지난 2일 저장 시설 포화를 이유로 하루 150만배럴의 원유 생산을 감축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업체인 케플러(Kpler)를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주요 저장 시설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으며 두 나라 모두 3주 안에 저장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동산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비상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원유 수입량의 71%가 중동산이다.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정유 4사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각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제 원유 시장 동향과 수급 상황을 점검 중이다.
주유 대란의 파장은 물가로 번질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 당 80달러 수준만 유지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르면 물가 상승률은 1.1%p까지 상승할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유가가 배럴 당 150달러까지 뛰면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중동 상황과 관련해 경제 및 물가 상황 점검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한다.
이 대통령은 중동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와 환율, 증시 등의 상황을 점검하고 특히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물가 영향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임재섭·강승구·박동욱 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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