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공습 다음 단계 지상전 갈림길
쿠르드족 무장세력 대리군 투입설 부상
美 부인하나 CIA 무기지원 등 개입 정황
IS 격퇴의 주역 또 '장기판의 졸' 떠맡나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공습 중심의 초기 국면을 넘어 지상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지도부와 군사 인프라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이어가며 전황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은 여전히 정치적 부담이 큰 선택지로 남았다.
미국 헌법상 전쟁 선포 권한은 연방 의회에 있다. 역대 미 대통령들이 의회의 정식 선전포고 없이 군사 작전을 단행한 사례는 적지 않지만, 대규모 지상군 투입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군의 대규모 인명 피해 가능성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안팎에서는 미국이 직접 지상군을 투입하기보다는 현지 세력을 활용한 '대리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 후보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집단이 바로 쿠르드 무장세력이다.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튀르키예·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인구 3000만∼4000만명의 산악 민족이다.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한 채 여러 국가에 분산돼 살고 있으며, 각국에서 자치권 확대나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이란 서부에도 약 1000만명가량의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외신에서는 쿠르드 무장세력이 이미 이란 국경을 넘어 작전에 나섰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폭스뉴스는 4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쿠르드 전사 수천 명이 이라크에서 이란 북서부로 진입해 지상 공격 작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매체와 일부 외신들도 이라크 북부 쿠르드 반군이 미국과 접촉하며 작전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는 상반된 주장도 나온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정부 측은 "이라크 쿠르드 전투원이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역시 미군이 이란 내 봉기 세력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보도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다른 기관이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CNN은 앞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란 내부의 반정부 봉기를 촉발하기 위해 쿠르드 세력과 협력하거나 무기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쿠르드 지도자들과 접촉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군사 지원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쿠르드 무장세력을 활용해 이란 서부에서 지상 압박을 가한다면 전략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쿠르드 세력이 이란 정부군이나 혁명수비대와 충돌할 경우 이란은 미국·이스라엘 공습에 대응하는 동시에 내부 전선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란 북서부 지역의 통제력이 흔들릴 경우 다른 소수민족들의 봉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쿠르드족이 또다시 강대국 전략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쿠르드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 분쟁에서 서방의 중요한 협력 세력으로 활동했지만, 전략적 가치가 사라지면 외면당하는 경험을 반복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이다. 2014년~2015년 시리아 북부 코바니 전투에서 쿠르드 민병대는 미국 주도 연합군의 공습 지원을 받으며 IS 확장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쿠르드 세력이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은 미국과 협력해 IS의 '수도'로 불리던 라카를 탈환하는 등 IS 영토 격퇴의 핵심 지상군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쿠르드 세력은 곧바로 튀르키예 군의 공격에 노출됐고, 미국이 사실상 동맹을 방치했다는 비판이 국제사회에서 제기됐다.
이 같은 경험 때문에 쿠르드 사회 내부에서도 이번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세력은 독립 또는 자치권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또 다른 세력은 다시 강대국의 전략에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쿠르드 무장세력을 활용해 이란을 압박하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쿠르드 세력이 이번 분쟁의 지상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된다면, 중동의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족은 또 한 번 강대국 전략의 장기판 위에 놓인 '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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