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소중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며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 그래야 그 소중한 것이 유지가 된다. 건강, 생명, 평화, 자유….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렇다.

소중한 아이들이 아플 때 가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지난해 30곳이나 감소했다. 폐업한 소아과 의원이 89곳으로, 신규 개원(59곳)보다 많았다. 신규 대비 폐업률이 150%로, 주요 진료과 가운데 가장 높다. 아니, 소아과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아침 일찍부터 ‘오픈런’을 해도 수십 명씩 대기하고 있어 힘들다는 하소연이 주기적으로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게 동네 소아과 의원인데, 의외다.

‘두쫀쿠 오픈런’처럼, 보통 오픈런까지 해야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면 수익성이 좋을테고, 그럼 너도나도 달려들어 제공자가 늘어나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적자와 소송 때문이다. 부모들은 오픈런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소아과 의사들은 포기하고 떠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밤중에 맹장이 터지면 수술해 줄 응급실이 전국에 5곳뿐이라는 기사가 나와 국민을 놀라게 했다. 정부가 “5곳은 일자별 당직으로 지정된 기관을 말한 것이고, 성인 복부질환 순환당직 참여 병원은 42곳”이라고 해명했지만, 야간에 맹장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 헤맸다는 하소연은 계속된다. 맹장 수술은 과거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내 경험이다. 1995년 늦은 저녁 갑자기 심한 복통이 와 100미터 떨어진 동네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긴급 맹장수술을 받았다. 당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금강병원이라는 병원이 있었고, 무려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었다. 새벽임에도 즉시 외과의사가 달려와 전신마취 후 수술을 해주었다. 복막염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었는데, 다시 생각해보아도 정말 고맙다. 금강병원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지만, 적자만 보았을 응급실과 야간 당직 외과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 많던 소아과와 응급실, 야간에 맹장수술을 해주는 외과의사들은 다 어디로 갔나? 혹시 의사 수가 감소한 것일까? 그 해 1995년과 2025년의 통계를 비교해봤다. 대략 인구는 4500만명에서 5175만명으로 15% 증가했는데, 활동 의사 수는 4만2000명에서 11만5000명으로 170%(7만3000명)나 크게 늘어났다. 소아과의 진료 대상인 0~19세 인구는 1489만명에서 681만명으로 54% 감소했는데, 소아과 전문의 수는 2900명에서 6300명으로 무려 117%(3400명)나 증가했다.

인구 대비 의사 수도 크게 늘어났고, 특히 소아과는 진료 대상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전문의가 4만에서 11만으로 정말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인구 대비 의사 수가 훨씬 적었던 30년 전에는 소아과 오픈런도 없었고 응급실 문제도, 야간 맹장수술의 어려움도 없었다.

그렇다면 원인은 단순히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소중한 생명을 돌보며 밤낮없이 일하는데 보상은 정부도 인정하듯 원가에도 못 미쳐서(원가의 70~80%) 환자를 볼수록 적자라면, 또 언제 소송을 당해 수억원의 배상을 할지 모르는 환경이라면, 누가 하려 하겠나.

진료 중 부모의 부탁을 받고 어린아이의 귀를 파주다가 몸부림치는 아이 때문에 귀에서 피가 조금 났는데, 민형사 소송 위협과 함께 수천만원의 보상금을 요구받았다는 한 소아과 의사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온다. 의료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소송, 갑질, 저수가로 ‘역주행하는 인센티브’가 그 많던 소아과와 응급실, 산부인과 등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특히 걱정되는 ‘소중한 것’은 안보다. 국군의 핵심인 장교조차 인력난이 심각하니 말이다. 올해도 전체 초급장교 모집 총정원(약 5000명)의 60% 수준인 3300명 정도만이 임관했다. 육군사관학교조차도 모집 정원(330명)에 한참 미달하는 250명이 임관하는데 그쳤다. 전방 부대의 하사관 부족 문제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낮은 임금에 존중도 받지 못하는 장교나 하사관을 왜 하느냐는 청년들에게 사회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건강은, 생명은, 안보는, 자유는 ‘소중한 나를 위해 당연히 서비스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동안, 사회의 소중한 시스템들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동안, 그 소중한 가치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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