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과거와 달라, 빈말아냐”
설탕·밀가루·교복 등 핀셋 경고
제분사 대표 7명, 담합 사죄·사임
국세청, 주식시장 반칙 3종 조사
공정위, 장례업계 뒷돈 첫 제재도
“아무리 돈이 마귀라고 하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5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여파로 유가 급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국내 주유소들이 가격 영향이 미치기도 전 단 하루 만에 기름값을 최고 200원이나 올리자 이재명 대통령이 폭발했다.
이 대통령이 짚은 건 위기를 핑계로 국민 주머니를 털려는 움직임이었다. 특히 임기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엄단 의지를 밝힌 ‘담합’, 이 가운데서도 서민의 삶과 직결된 ‘생활담합’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발본색원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중동) 상황을 이용해 돈을 좀 벌겠다고 혼란을 주는 것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것 같다”며 “(국제유가가) 국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돼서 가격이 조정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오를 거라고 예상된다고 갑자기 소비가격 자체가 폭등하는 건 국가적 어려움을,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자기 이익만 보겠다는 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휘발유 등 가격 급등 현상은) 바가지 아니냐”며 “지역별로 유류 종별로 현실적인 최고 가격을 신속하게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즉석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통해 정유사의 담합 여부도 점검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에 따르면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석유판매 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생활담합 엄단’ 기조는 집권 초부터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설탕·밀가루·전분당·교복 같은 필수 품목부터, 장례식장 ‘뒷돈’ 관행,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까지 생활과 시장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담합·폭리’에 대해 동시다발로 칼을 빼 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연달아 “담합은 암적 존재”, “반복되면 영구 퇴출” 같은 강경한 메시지를 내며 각 부처에 대응을 지시했고, 정부 각 부처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평소 국민들이 정부 정책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정책 효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정책을 대충 흘려보내는 법 없이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점검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에 정부 부처가 단호하게 움직이면서 담합 행위도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국제분협회는 이날 오전 정기총회를 열고 국내 제분업계의 밀가루 가격 담합과 관련해 “국민에게 큰 실망과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담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제분회사 대표 전원이 협회 이사회에서 물러나 자숙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협회는 앞으로 식량안보와 식품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정도경영을 통해 제분업계 발전에 힘쓰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제분협회 회원사는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대선제분, 삼양사, CJ제일제당, 삼화제분, 한탑 등 7곳이다.
제분 7개사는 6년간 밀가루 가격을 담합해 판매한 혐의로 20년 만에 공정위의 심판을 받게 됐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국내 기업 간 거래(B2B)에서 반복적으로 밀가루 판매 가격 및 물량 배분을 밀약한 혐의를 전원회의에서 심의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담합 판단이 나오면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 규모로는 최대 1조2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칼끝은 주로 ‘생활비 사각지대’를 향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날 경기 양주장례식장의 부당한 고객 유인행위에 시정명령(행위금지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양주한국병원장례문화원은 상조업체 장례지도사들에게 유가족 알선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치는 장례 분야에서의 리베이트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적발하고 제재한 첫 사례다. 공정위는 전국 5개 권역 주요 장례식장으로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천명했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해치는 주요 범죄로 지목돼 이 대통령이 “패가망신”을 언급했던 주식 불공정 거래도 단속의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이날 지난 8개월간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집중 조사해 6155억원의 탈루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허위공시·전문 기업사냥꾼·사익편취 지배주주 등을 겨냥해 소득 탈루액 2576억원을 추징하고 46건(고발 30건, 통고처분 16건)의 조세 범칙 처분을 병행했다.
이 대통령이 최근 자본시장 정상화와 ‘코리아 프리미엄’을 반복적으로 언급해온 맥락에서 보면 국세청의 칼날은 ‘주가 조작·불공정 거래’라는 시장판 담합을 끊어내겠다는 정부 기조와 맞물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선 주유소들의 기름값 대폭 인상과 담합 의혹은 정부 당국의 사정권에 들었다는 평가다. 평소 이 대통령 리더십 스타일로 보면 최소 몇 달은 주유소 담합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와 책임 추궁, 대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국민주권정부는 빈말하지 않는다”며 “규칙을 어겨 이익 보는 시대, 규칙을 지켜 손해 보는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생활담합에 관한 한 이 대통령의 자비를 기대하기 힘든 근거가 담긴 발언이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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