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왕각’(滕王閣·텅왕거)은 중국 강서성(江西省·장시성) 난창(南昌·남창)에 있는 누각이다. 호북성(湖北省·후베이성) 우한(武漢·무한)의 ‘황학루’(黃鶴樓), 호남성(湖南省·후난성) 웨양(岳陽·악양)의 ‘악양루’(岳陽樓)와 함께 ‘강남 3대 누각’으로 불린다. 중국의 문인들은 산천 수려한 곳에 자리잡은 누각에 올라 명시와 명문장을 남겼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唐)의 두보(杜甫)는 ‘등악양루’(登岳陽樓·악양루에 올라)를 지었으며, 성당(盛唐) 시기 최호(崔顥)는 당 나라 칠언율시 중 최고라는 ‘황학루’(黃鶴樓)를 남겼다. 강남 3대 누각 가운데 등왕각을 으뜸으로 치는 것도 당의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로 인해서다.

등왕각은 당 태종(唐 太宗) 이세민의 22번째 동생인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嬰)이 영미(永微) 4년(653)에 지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흥성과 쇠퇴를 거쳐 명대(明代) 경봉 연간(景奉 年間) 지방행정 도어사(都御使)인 한옹(韓雍)이 개건(改建)해 규모는 3층 높이 27m, 너비 14m의 누각이 됐다. 청나라 동치 연간에 28번째 재건을 했지만 1929년 군벌들 간 전쟁으로 완전 소실된 것을 1989년 29번째로 재건됐다. 당나라때 처음 지어진 건물은 높이가 약 18m였으나, 현재의 등왕각은 지하실을 포함해 9층이며 높이 57.5m다.

등왕각(滕王閣, 텅왕거) [중국주서울관광사무소·CNTO 홈페이지]
등왕각(滕王閣, 텅왕거) [중국주서울관광사무소·CNTO 홈페이지]

등왕각은 사대부들이 손님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던 곳이었다. 명대(明代)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도 이곳서 잔칫상을 벌여 각 대신들의 공로를 표창했다. 문인들은 등왕각에 올라 시와 글을 지었으며 야간에는 등불을 관상했다.

왕발이 등왕각에 등장한 것은 당 고종 함형(咸亨) 2년(671)때다. 도독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을 수리하고 9월 9일 손님을 청해 잔치를 베풀었다. 염백서는 사위 오자장(吳子章)에게 등왕각 서문을 짓게 하고 당일 잔치 자리에서 사위 자랑을 하려 했다.

잔칫날이 돼 염백서는 종이와 붓을 내어놓고 손님들에 등왕각 서문(序文)을 짓기를 청했다. 아무도 쾌히 지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왕발은 교지국(베트남) 북부에 있는 아버지 왕복치의 임지(任地)에 가려고 장안을 떠나, 마침 등왕각 연회에 가장 젊은 손님으로 참석하게 됐다. 염백서가 낸 지필(紙筆)이 왕발의 앞에 왔을 때, 왕발은 주저없이 붓을 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등왕각서’다. 등왕각서는 수려한 풍경 묘사, 자신의 비운한 처지와 포부, 인생의 덧없음을 절묘하게 묘사해 중국의 4대 명문으로 꼽힌다.

염백서는 왕발의 글가운데 ‘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낙하여고목제비 추수공장천일색)라는 구절을 보고 무릎을 쳤다.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한 빛이로구나‘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현재 등왕각 1층 입구 커다란 2개 기둥에 주련(柱聯)으로 써있는데, 마오쩌둥의 글씨다. 염백서는 책상을 어루만지며 감탄하고 “천하의 천재로다”고 칭찬한 후 잔치를 마쳤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왕발은 산서성 하진현 용문 출생으로 수(隋) 나라 말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다.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부터 신동으로 불릴 만큼 일찍 글을 깨달은 천재로,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했다. 젊어서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조산랑(朝散郞)이 되어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다. 그러나 고종 이치(李治)의 아들이 투계를 좋아하자 이를 풍자한 ‘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이란 글을 지었는데, 이 글로 고종의 미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한 뒤 방랑하게 된다.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던 중,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배에서 떨어져 익사했다.

왕발의 ‘등왕각서’는 장문의 서에 이어 다음과 같은 시로 끝을 맺는다.

滕王高閣臨江渚 (등왕고각임강저·등왕의 높는 누각 강을 내려다 보고)

佩玉鳴鑾罷歌舞 (패옥명란패가무·패옥 소리, 방울 소리, 노래와 춤 멈추었네)

​畫棟朝飛南浦雲 (화동조비남포운·​ 아침이면 단청 고운 누각에 남포의 구름 날고)

朱簾暮捲西山雨 (주렴모권서산우·저녁에 주렴 걷자 서산에 비 내리네)

閑雲潭影日悠悠 (한운담영일유유·한가로운 구름과 연못에 비친 그림자 날마다 여유롭고)

物換星移度幾秋 (물환성이도기추·사물과 세월 바뀌어 몇 가을을 흘렀는지)

閣中帝子今何在 (각중제자금하재·​ 누각속 왕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檻外長江空自流 (함외장강공자류·난간 밖 장강만 홀로 흘러 가누나)

아름다우면서도 유구한 자연의 풍광 속 흘러 변화해가는 인생의 아스라함이 느껴진다. ‘경’(景)을 통해 ‘정’(情·생각과 마음)을 표출하는 건 중국 문학 작품의 전형이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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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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