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혁명수비대 “석유 한 방울도 안 내보낼 것”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한·일·중에 특히 직격탄
브렌트유 선물 장중 13%, WTI 선물 12% 급등
비축유 충분하지만 당장 가격급등에 피해 발생
에너지 의존 구조 바꾸지 않는 한 위기는 반복
한국의 ‘에너지 생명선’이 막혔다.
이란혁명수비대가 2일(현지시간) “석유 한 방울도 안 내보낼 것”이라며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공습전이 격화하며 원유·천연가스(LNG) 해상운송의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에너지 위기가 닥쳤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과 일본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이코노미스트의 보고서를 인용해 중동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받을 경제적 충격이 클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직접적으로 0.2∼0.3%포인트씩 줄어든다는 게 모건스탠리 측 추산이다. 모건스탠리 보고서는 “현재의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될 경우 유가 급등은 (아시아의) 성장률과 거시 안정성 위험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도 2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공습이 전체 중동 분쟁으로 확전 양상 보이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아시아 각국이 피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 주요국들은 수주에서 수개월 버틸 수 있는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이 확대되고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3일 현재 나흘째 계속되고 있다.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 요충지다. 이곳을 지나는 원유의 약 80%가 아시아로 향한다. NYT는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자국 내 에너지 생산이 제한적인 한국과 일본이 특히 취약하다”고 짚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일본은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한다.
두 나라는 일단 비축유로 버틸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말 기준 210일 이상, 일본은 254일 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 NYT는 “설령 물리적 공급이 유지되더라도 가격 급등이 이어질 경우 무역수지와 물가에 심각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 비용을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그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NYT는 특히 일본의 충격이 클 것으로 지적했다. NYT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는 일본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를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금 지급이나 감세 등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에너지발 물가 상승과 맞물리면 국가 부채 부담이 커지고, 채권 시장에 추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과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NYT에 따르면 중국은 해상 원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며, 이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이란산이다. 이란산 공급이 막히면 더 비싼 대체 물량을 찾아야 한다. 대만 역시 전체 석유 수입의 60%, 천연가스 수입의 3분의 1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친다. NYT는 “대만의 에너지 공급 차질은 전력 불안을 초래하고, 이는 반도체 생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도 일본이나 중국 대만 못지 않게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율은 71%가량(2025년 추정치 기준)이고 이 가운데 95%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수입된다. LNG의 중동 의존율은 20%~30%이나 호르무즈를 통과해야 하는 카타르산이 그 대부분이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폭스뉴스에 “해협이 완전히 폐쇄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시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13% 급등했고, 뉴욕상품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12% 치솟았다. 갈등이 장기화하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물류 차질도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외신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수백 척이 해협 인근에서 발이 묶였고, 해상 보험사들이 전쟁 위험을 이유로 보장을 중단하면서 선사들이 중동행 운송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을 흔드는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신호다.
게다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항공 허브 역할을 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카타르 등의 국제공항들이 이란의 직·간접 타격을 받아 폐쇄된 상태다. 두바이는 여객 뿐 아니라 항공물류와 비즈니스, 금융 허브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들 공항들의 폐쇄가 장기화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항공 수출 길에도 큰 지장이 초래된다.
결국 이번 사태는 ‘에너지 생명선’이 특정 해역에 집중된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한국과 일본은 당장 비축유로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가격 급등과 장기 봉쇄라는 공포 앞에서 손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돼 있다.
이번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제조업 근간의 한국경제에 원가, 물가, 금융시장까지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의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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