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지만, 그의 행보는 오히려 더 거칠어졌다. 판결 직후 그는 곧바로 10% 추가 관세로 맞대응했고, 다음날 15%로 올렸다. 국정연설에서는 노골적인 대결 구도와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일관성 대신 변덕, 숙고 대신 오기가 앞서는 그의 행보는 세계를 불안의 롤러코스터로 밀어넣고 있다.

◆판결 이후 더 강해진 강공 드라이브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1977년 제정)에 입각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6대3으로 판단했다.

9명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구도로 보수 우위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어젠다에 유리한 판결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 가운데 3명, 그리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등 6명이 위법 판단을 내렸다.

이들은 ‘관세는 헌법상 의회의 권한이며, 대통령이 행사하려면 명시적 위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뼈아픈’ 타격이었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6명을 맹비난했다.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 내내 위법 판단을 내린 대법관 6명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바보 노릇을 하고 라이노(명목상으로만 공화당원이라는 뜻으로, 중도파 공화당원들을 비난하는 표현)들과 급진 좌파 민주당원들의 애완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어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미 동부시간 24일 0시 1분부터 해당 관세가 발효되도록 하는 포고문을 냈다. 그러고는 하루 뒤에는 관세율을 10%에서 1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은 지난 24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국정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상호관세 위법 판단을 내린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다른 참석자들에게는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환담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형식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과 태도는 건조했다.

연설은 1시간 48분 동안 이어졌다. 역대 최장이었다. 연설의 톤은 타협보다 대결에 가까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은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바마케어를 비난했고 이민자 정책 성과를 자랑했다. 민주당 의원을 향해서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치면서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민주당에 돌렸다. 그는 “민주당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연설의 대부분은 자화자찬이었다.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는 전례 없이 호황이다”, “전 세계에서 18조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붓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받아냈다”,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미국인이 오늘날 노동하고 있다”, “작년에 전 세계에서 전쟁 10개를 끝냈다”, “관세 수입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이미 체결한 무역합의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등이다.

CNN은 “트럼프의 발언은 실태에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과장됐으며, 심지어 가짜뉴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변덕과 오기의 끝판왕’이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의 제동에도 더 강한 관세 카드로 맞받아치는 모습, 거리낌 없이 말을 바꾸는 태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자화자찬은 국정을 ‘전략’이 아닌 ‘기질’로 끌고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키운다.

◆역사가 증명한 ‘감정 정치’의 위험

트럼프의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뒤집히고, 외교는 협상과 압박 사이를 급선회한다. 개인적 감정이 국정의 톤을 좌우한다는 비판도 따라붙는다. 역사에는 ‘변덕과 오기’가 통치 스타일로 굳어지면서 국가 향방을 뒤흔든 사례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 인물이 로마 황제 네로다. 그는 예술가적 자의식과 과도한 자기 확신 속에서 ‘오락가락 정책’을 펼쳤다. 비판 세력도 잔혹하게 숙청했다. 로마 대화재 이후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결정은 통치자의 감정화된 권력이 어떤 파국을 부르는지 잘 보여준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 결혼 문제에서 비롯된 갈등은 로마 가톨릭과의 결별이라는 대사건으로 번졌다.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렸지만, 출발점에는 고집과 자존심이 자리했다. 통치자의 ‘사적 결단’이 국가 질서를 뒤흔든 전형이다.

현대에 와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되고 있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현장 지휘관들이 전술적 철수를 건의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선과 고집으로 전쟁을 밀어붙였고, 결국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파멸시켰다.

한국사에서도 통치자의 성정(性情)이 국정 전반에 큰 파장을 남긴 사례는 적지 않다. 연산군이 대표적이다. 그의 개인적 분노와 의심은 무오·갑자사화로 이어졌다. 권력이 감정에 휘둘릴 때 국가의 운명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단단해져야 할 민주주의

물론 트럼프식 정치가 계산된 협상 전술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하게 밀어붙인 뒤 후퇴하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거래의 기술’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제 질서와 통상 체계는 개인이 벌이는 사업 협상과는 다르다. 변덕과 오기로 비칠 만큼 잦은 방향 전환은 정책 일관성을 잃게 만들다. 이는 상호 불신의 구조를 굳힌다.

통치자의 변덕은 불확실성을 낳고, 오기는 타협의 공간을 지운다. 제도가 이를 견제하지 못할 때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이를 제어하는 장치의 유무다. 민주주의는 지도자의 결단을 가능하게 하되, 그 결단이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작동하도록 묶어두는 체제다. 변덕과 오기가 강해질수록 그 울타리는 더 촘촘해져야 한다.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안전벨트이기 때문이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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