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다주택자를 겨냥한 이재명 대통령의 저격은 오늘도 쉬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24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다시 한번 미리 알려드리지만, 다주택을 유지하든 비거주 투자용 주택을 보유하든, 평당 3억원씩 하는 초고가 주택을 보유하든 자유지만 비정상의 정상화에 따른 위험과 책임은 피할 수 없다”며 “부동산 정상화는 불법 계곡시설 정비보다 쉬운 일이니 정부에 맞서지 말라”고 재차 경고했다.
지난 1월 23일부터 이날까지 한 달 넘게 이 대통령이 엑스에 올린 부동산 관련 포스팅만 26건, 그 안에 ‘다주택’ 지적은 72번 반복됐다. 권력의 의지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찬 대통령의 SNS는 다주택자를 향한 조준경이 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쏟아낸 부동산 시장에 대한 발언들은 경제학의 기초인 ‘수급의 유연성’을 무시한 확증편향을 보여주는 듯 해 걱정스럽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임대 공급도 줄지만 임차 수요도 동시에 줄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설파했던 ‘호텔 경제학’의 치명적 모순과도 닮아 있다.
호텔 경제학에선 여행객이 낸 호텔 예약금 10만원으로 호텔 주인은 가구집에서 침대를 사고, 가구집 사장은 치킨을 주문하고, 돌고 돌아 문구점 주인이 호텔 주인에게 진 빚 10만원을 갚는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10만원을 돌려받아 떠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돈 한 푼 없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경제가 돌게 된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다.
여기에서 맹점은 돈이 도는 모든 과정에서 저축이나 별도 지출 같은 ‘누출’이 없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현실에선 돈이 돌다가 저축이라는 형태로 잠기기도 하고, 빚을 갚지 못해 파산자가 생기기도 한다.
부동산 시장도 그렇다.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으면 무주택자가 그 집을 사들여 임차 수요가 줄어든다는 계산은, 마치 호텔 예약금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 다시 호텔 주인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적 환상과 궤를 같이한다.
대통령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집이 나오는 대로 전월세 세입자가 바로 집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딴 판이다.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10을 웃돌며 공급 부족 상태다. 다주택자 매물이 나와도 갈아타기 수요자가 이를 매입하면, 기존 세입자는 갈 곳을 잃게 된다. 다주택 공급 한 채와 전월세 수요 한 채는 결코 산술적으로 상쇄되지 않는다.
자본 제약의 현실적 벽도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임차자 중 매매 전환 유효 수요는 20%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나머지 80%는 다주택자 매도 시 줄어드는 임차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 사라진 시장에서 전월세 대란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의 다주택자 때리기는 복잡한 현실 변수(공급 제약, 금리, 대출, 지역별 수급, 세대 이동)를 ‘다주택=투기’라는 단일 원인으로 환원하고, 그 위에 선악 구도를 얹은 뒤 비판엔 ‘이해력 부족’으로 깎아내렸다.
호텔 경제학이 ‘돈이 돈다’는 현상 하나 만으로 현금 흐름의 모순을 감추려 했듯, 대통령의 SNS 한마디는 “다주택 투기”라는 프레임 하나로 주거 시장을 형성한 여러 축을 지워버린다.
투기 억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거친 메시지만으로는 시장을 바꾸지 못한다. 경고는 매물을 늘릴 수 있겠지만, 불확실성은 관망을 부르고, 관망은 거래 절벽을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적개심을 쏟아내는 SNS 경고가 아니다. 임차인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 물건이 충분히 나올 수 있도록 공급 유인 체계를 복원하는 일이다.
호텔 경제학이 전제조건의 구멍 탓에 조롱을 불렀듯, SNS에 올리는 과잉 단순화는 정책 신뢰라는 비싼 자산을 갉아먹을 수 있다. 호텔 예약금이 사라진 마을에 남는 것은 청산된 빚이 아니라, 돌아가지 않는 경제 침체뿐이다.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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