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낙동강의 물줄기가 역류하는 듯한 기이한 기류다. 한국 보수 정치의 단단한 뿌리이자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던 대구의 버팀목이 거센 태풍 앞에서 신음하고 있다. 마주한 것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지각 변동의 전주곡이다. 낡은 외투를 고집하며 스스로 고립된 거대한 함선이 침몰 직전의 경적을 울린다.
“민주당 44% 국민의힘 22%”, ‘더블 스코어’의 정당 지지율은 상징적이다. 수도권과 부산·경남도 흔들리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곳은 보수의 심장이다. 전국단위조사의 TK 표본이 이례적으로 양당 동률 32%다. 물론 비슷한 시기의 지역단위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58%였고 다른 조사는 63%였다. 32%에서 63%까지의 극단적 편차는 수치의 차이가 아니라 TK 민심의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드러낸다. 텃밭의 땅이 안에서부터 갈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의 마지노선은 20%다. 2017년 첫 탄핵 대선의 자유한국당 홍준표 득표율(24%)이 기준선이다. 최근 조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무죄”라고 답하는 비율이 18%와 29%, 유죄 판결에도 “절연 불가”가 25%로 나타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왠만한 외부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면서 동시에 국민의힘이 갇혀버린 비좁은 감옥의 크기다.
문제는 이 견고한 성벽 안과 밖의 풍경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국민 여론과 철저히 분리되고 있다. 한동훈 제명을 둘러싼 여론을 보면 갤럽 조사에서 전체 국민의 제명 찬성은 33%에 불과했지만 국힘 지지층에서는 48%, 극보수층에서는 62%가 찬성이다. 더 안쪽에는‘부정선거론-계엄 불가피론-탄핵 반대론’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부정선거론의 공감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78%에 이른다. 탄핵 반대 여론도 보수층에서는 75%였다.
국민 대다수가 상식의 눈으로 비판할 때 당원들은 신념의 눈으로 옹호한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대중과 호흡하는 공적 도구가 아니라 특정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의 폐쇄적 결사체로 변질되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자명하다. 전국 정당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최대 20% 최소 15% 지지율’을 가진 강소이념정당(强小理念政黨)으로 쪼그라들 것이다. 자민련이 걸었던 길보다 더 협소하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길이다. 대중성을 포기한 채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에게만 호소하는 정당은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어도 당내 권력은 영원히 독점할 수 있는 기형적인 생존 방식을 택하게 된다.
상반된 여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치학자 오토 키르크하이머(Otto Kirchheimer)는 정당이 계급과 이념을 넘어 폭넓은 유권자를 아우르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와 당 지지층 간 극단적으로 벌어진 인식 격차와 전통적 텃밭마저 흔들리는 지지율 추락은 국민의힘이 포괄정당은커녕 시대착오적인 ‘엘리트 종파정당’(Elite Sectarian Party)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온건파를 축출하고 극단적 지지층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현상과 유사하다. 전형적인 ‘활동가 포획’(Activist Capture)의 결과다. 합리적 다수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가장 크고 강한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활동가 집단이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한다. 이들에게 중도 확장은 배신이고 혁신은 투항일 뿐이다.
‘보수의 재구성’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다. 재구성은 단순히 간판을 바꿔 달거나 새로워 보이는 인물을 몇 명 영입하는 수준의 리모델링이 아니다. 그것은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를 담아낼 플랫폼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짜는 창조적 파괴여야 한다.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는 그 재구성의 문을 여는 결정적 계기일 수 있다.
선거 결과가 분기점이다. 국민의힘이 이 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드느냐에 따라 보수 재구성은 질서 있는 전환이 될 수도 있고, 폐허 위에서의 처절한 재건이 될 수도 있다.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의힘이 영남과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사수하며 “졌잘싸!” 논리로 현 체제를 연명하는 경우다. 그러나 서서히 죽어가는 ‘만성 질환’의 연장일 가능성이 우려된다. 다른 하나는 국민 전체가 충격에 빠질 만큼의 궤멸적 패배를 당하는 경우다. 역설적이게도 철저한 패배만이 기득권의 껍질을 깨고 새로운 보수의 싹을 틔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
대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하나는 전통적 지지를 이어가며 국민의힘에게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남 자민련’으로 안주하며 현 체제의 관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하나는 냉철한 심판을 통해 재편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비로소 국민의힘 내부의 ‘활동가 포획’ 사슬이 끊어지고 근본적인 쇄신 논의가 시작될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보수는 지금 절벽 끝에 서 있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버틸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올 것인가. 운명의 키는 대구에 있다. 대구가 변하면 보수가 변하고, 보수가 변하면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는 계기가 된다. 선택의 시간이다. 보수의 재구성! 대구가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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