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첨단 기술과 접목된 풍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대칭 전력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늘을 느리게 떠도는 풍선이 21세기 군사 전략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풍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새로운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반부터 풍선을 활용해 왔다. 풍선은 레이더에 포착이 잘 안되고, 전파로 무력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공지능(AI), 기상 예측 데이터와 결합하면 먼 거리의 목표물까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폭탄이나 수류탄을 떨어뜨리는 데에 풍선을 활용하고 있다. 또 레이더에 마치 전투용 군용기처럼 비치도록 설계된 적재물을 풍선에 달아서 날림으로써 러시아가 방공 역량을 낭비토록 유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풍선 활용법으로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의 유전, 정유소, 항만, 철도 등을 공격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풍선으로 공격용 드론을 모스크바에 투하해 주요 공항들이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선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풍선의 이동 방향이 자연스럽게 동쪽, 즉 러시아 쪽으로 향한다.

풍선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 높다는 것이다. 풍선은 수백 달러에 불과한 저비용 자산이다. 반면 이를 요격하려는 상대는 수백만 달러가 들 수도 있어 비대칭 전력의 이점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효율성이 입증되자 다른 국가들도 풍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육군은 최근 3년간 군사용 풍선에 1000만달러(145억원) 이상을 썼다. 오는 4월 네바다주와 유럽 전역에서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는 고고도 풍선을 이용한 훈련을 할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태평양에서 많은 수의 군사용 풍선이 시험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태평양 일대의 무기·보급품 운송, 중국과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정찰 임무 수행 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동맹국들, 그리고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인 벨라루스, 북한 역시 풍선을 다양한 군사적 목적으로 시험중이다.군사용 풍선의 역사는 중국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갈공명은 아군에게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등을 만들어서 하늘 높이 띄웠다. ‘공명등’(孔明燈)이라 불리는 풍등(風燈)의 유래다. 이후 화공(火攻) 수단으로 변형됐다. 몽골 제국과 청나라 역시 기구(氣球)나 연을 활용해 전쟁을 치렀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미 본토를 향해 ‘풍선폭탄’을 대량으로 날렸다. 제트 기류를 타고 북태평양을 건너 미 본토에 도달하면 떨어져 폭발하는 구조였다. 9300여개의 풍선을 보냈고, 그 중 300여개가 북미 상공에 도착했다. 군사적 타격은 미미했으나 심리적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유럽의 경우 풍선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공중 정찰용으로 쓰였다. 수소를 채운 기구에 탑승한 사람이 적군의 위치를 정찰하고 전투용 지도를 만들었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과 보불전쟁 때는 군사용 기구 사용이 더 흔해졌다.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 때 ‘체펠린’ 비행선을 띄워 영국 런던을 공습했다.

현대의 풍선은 전투기보다 높고, 위성보다 낮은 고도에서 활동하며 비용 대비 효율이 뛰어난 군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량 카메라와 다른 센서를 달고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풍선이 첨단 기술과 만나 부활했다. 값싼 작은 풍선이 전쟁을 흔들고 있다.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박영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