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러시아 합동 해군 훈련(PASSEX)을 위해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 항에 도착한 러시아 초계함 ‘스토이키’에서 러시아와 이란 해군 장교들이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EPA 연합뉴스
이란·러시아 합동 해군 훈련(PASSEX)을 위해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 항에 도착한 러시아 초계함 ‘스토이키’에서 러시아와 이란 해군 장교들이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EPA 연합뉴스

이란이 미국의 무력 사용에 대비해 국가 전체를 전시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도널드 트럼프와 테헤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두 사람의 선택이 이란의 운명을 가를 것입니다. 이란 국민들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이란 정권은 최근 병력을 전진 배치하고 지휘 권한을 분산했습니다. 미국의 주요 표적이 될 수 있는 핵 프로그램 운용 시설을 요새화하고 혼란 속에 내부의 적이 될 수 있는 반체제인사 탄압도 확대했습니다. 이는 미국과의 핵 합의를 원하지만, 협상이 실패할 경우 정권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조치로 관측됩니다.

이란은 현재 수십 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악화하는 경제 상황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대규모 유혈 진압으로 내부 불만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을 이란 남부 오만 근해에 배치하고 공습에 필요한 각종 군함과 군용기를 속속 중동에 들여와 이란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대학원의 파르잔 사베트 연구원은 “이란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난 1988년 이후 최악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지도부 참수 작전을 방지하고 핵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최고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중”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 협상을 진행했지만, 가시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란 측은 양측의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2주 안에 다시 오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란 정부 내부에서도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과 이란이 제시할 수 있는 조건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WSJ은 전했습니다.

상당한 진통을 겪는 협상 상황을 반영하듯 이란은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대비한 실질적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휘부 와해 때 일선 부대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방어 전략을 부활했습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에는 혁명수비대 해군이 전진 배치됐습니다. 이란은 만일의 사태 때 ‘글로벌 에너지 동맥’을 막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혀왔지요. 이란의 최대 우군인 러시아의 군함도 이란과의 합동 훈련을 위해 이란 남부 반다르 아바스항에 입항했습니다.

핵 시설 방어 태세도 강화됐습니다.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분석한 위성 사진에 따르면 이란은 이스파한 핵 시설과 이른바 ‘곡괭이 산’(Pickaxe Mountain) 지하터널 단지의 입구를 콘크리트와 암석으로 보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습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군 특수부대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내부적으로는 반정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공포 정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혁명수비대는 테헤란 주변에 100여 개의 감시 초소를 설치해 이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작년 연말 시위 시작 이후 5만3000명 이상이 체포되고 7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합니다.

미국은 이란과의 전면전 가능성에 대비해 전투기 편대를 중동으로 급파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F-35 스텔스기와 F-16 등 미군 전투기 50여 대가 중동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장시간 공습 작전을 지원할 공중급유기들의 동선도 대거 동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이번 군사력 증강이 협상에서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인지, 실제 공습을 염두에 둔 조치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미 행정부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전쟁을 만류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향후 몇 주 안에 군사 행동이 일어날 확률은 90%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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