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제 담은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법사위 통과 파장

대법원 "사실상 4심제… 3심제 근간 흔드는 위헌적 발상" 강력 반발

헌재·민주당 "재판도 공권력 일부… 오판 인한 국민 피해 구제 국가 의무"

독일 ‘사전심사’·대만 ‘선별절차’ 등 남소 방지 장치 없는 개문발차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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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단독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배제해온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른바 '재판소원제'의 도입이다. 이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이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1987년 체제 이후 유지된 '대법원(최고법원)-헌법재판소(헌법심판)'의 이원적 사법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변화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재판소원에 관한 참고자료'를 배포하며 "헌재는 태생적으로 정치적 기관"이라며 재판소원 도입이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며 입법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변호인 접견불허 위헌확인 헌법소원 선고기일에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변호인 접견불허 위헌확인 헌법소원 선고기일에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개정과 사법 체계의 변화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단서가 붙어 있다. 바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다. 이 조항 때문에 국민은 재판 과정에서 헌법이 침해됐다고 느껴도,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더 이상 다툴 방법이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법원이 적용해 재판했더라도, 그 재판 자체를 취소하는 길은 막혀 있었다. 이는 1987년 헌법 체제(6공화국)이후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는 법원 조직과 헌법재판소를 분리한 이원적 사법 체계의 근간이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이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입법 취지는 명확하다. "법원의 재판 역시 공권력의 행사이므로, 그 재판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면 예외 없이 헌법재판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만약 이 법이 시행되면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심리하여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나아가 그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된다. '재판소원제'는 대법원의 최종심 권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가 가능해짐을 시사하는 것으로 사법부 내 최고 권위기관 간의 위상 재정립이 불가피함을 예고한다.

이 논쟁의 시발점은 헌법재판소의 1997년 결정(96헌마172)이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고 합헌으로 해석해 재판한 경우, 그 재판을 취소할 수 없다면 이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한정위헌(변형결정)을 내린 바 있다. 기본권 침해가 생긴 경우까지 '재판'이라는 이유로 아예 구제를 닫아버리면 헌법소원 제도가 무력해질 수 있다는 취지로 예외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 예외 논리를 아예 법률로 정리·확대하려는 시도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 접수 상고만 연 5만건… 시스템 마비 우려

대법원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법원행정처와 대법관 회의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반대 성명을 낸 배경에는 '헌법 제101조 위반'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우리 헌법은 사법권을 법원에 속하게 하고, 최고 법원을 대법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심사하고 취소할 수 있다면 이는 헌재가 대법원 위에 군림하는 '상급심'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헌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한 사실상의 4심제 도입"이라며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기판력(확정된 판결의 효력)을 무너뜨리는 처사"라고 우려하고 있다.

법조계의 현실적인 우려도 크다. 한국은 이미 '고소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소송 남발이 심각한 나라다. 3심까지 거쳐 패소한 당사자들이 "헌법재판소에서 한 번 더 다퉈보자"며 헌법소원을 낼 경우, 헌재는 폭증하는 사건을 감당할 수 없고, 법원은 확정된 사건이 헌재 결정으로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안정성에 시달리게 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국민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 사건만 연간 5만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안전장치 없는 재판소원제가 작동한다면 사법 시스템의 마비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찬성 측 "사법권도 공권력의 일부분… 성역은 없다"

찬성 측인 헌재와 민주당은 '기본권 보호의 완결성'을 내세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헌법소원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는 것은 위헌적 입법 부작위라는 논리다. 헌재는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재판소원이 권력 분립이나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헌법상 근거가 없다"며 "오판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대법원의 입장을 반박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권 독립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며 찬성론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 역시 18일 "대법원은 성역이 아니다"라며 "기득권을 주장하지 말고 국민 기본권 보장에 답하라"고 압박했다. 이들은 독일과 스페인 등 헌법재판 선진국들이 모두 재판소원을 인정한다는 점을 들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했다. 찬성 측에선 또 '4심제 프레임'이 본질을 호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소원은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거나 형량을 조정하는 일반적인 상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판소원은 오직 '재판 과정이나 결과가 헌법에 위반되었는지'만을 따지는 특수한 절차"라고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법원이 합헌으로 결정된 법률을 잘못 해석하여 적용하거나, 소송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진술권 등)를 묵살한 채 판결을 내렸다면 이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법사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사법부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호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법원도 헌법 아래에 있는 기관인 만큼 헌법적 통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즉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라는 이름의 공권력 행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하자는 명분이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해외 사례의 '반쪽'만 가져온 재판소원제… "독일·대만 강력한 '거름망' 작동"

찬성 측은 독일, 스페인, 대만의 재판소원 운영 사례를 근거로 든다. 그러나 법조계는 "해외 사례의 핵심은 '허용'이 아니라 '통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법(BVerfGG) 제93조를 통해 엄격한 '지정재판부 사전심사제'(Annahmeverfahren)를 운영한다.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거나 청구인에게 중대한 불이익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심리 자체를 하지 않고 각하한다. 실제로 독일 연방헌재 접수 사건의 90% 이상이 이 문턱을 넘지 못한다.

가장 극적인 대조군은 대만이다. 2022년 '헌법소송법' 전면 개정으로 재판소원제를 도입한 대만은 제도 시행 직후 소송 폭주에 직면했다. 대만 헌법재판소 통계에 따르면 제도 도입 전인 2021년 747건이던 접수 건수는 도입 첫해인 2022년 4371건으로 약 5.8배 폭증했다. 그러자 대만 역시 독일처럼 강력한 요건 심사를 두고 남소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재 개정안은 '대상 확대'만 명시했을 뿐, 독일식 사전심사나 대만식 선별 절차 같은 '남소 방지 장치'는 빠져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이 12일 국회에서 전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통과된 것과 관련,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이 12일 국회에서 전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통과된 것과 관련,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파기환송'의 딜레마… 대법원-헌재 '무한 핑퐁' 우려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실무적 난관은 첩첩산중이다. 가장 큰 쟁점은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의 효력이다. 독일과 대만은 헌재가 위헌적인 재판을 직접 '취소'(Vacate)하고 사건을 다시 법원으로 '환송'(Remand)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들 두고 법조계 내부에선 "대법원과 헌재 두 기관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재판이 무한정 표류하는 '사법 핑퐁'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판결이 확정되었음에도 헌재 결정으로 다시 재판이 열리고, 그 재판 결과에 불복해 또다시 헌재로 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대법원은 이 과정에서 재판소원이 고액의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권력자나 자산가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전심사에서 각하될 가능성이 높아 서민들에게는 소송비용만 쓰게 하는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헌법학자인 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독일과 스페인의 경우 전원재판부가 두 개로 운영되고 있다"며 "현행 구조에서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도입할 경우 현재의 조직과 인력만으로는 사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판소원 도입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절차적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졸속 추진되는 점은 문제"라며 "민주당이 재판소원을 추진하는 배경이 진정으로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법부를 압박하거나 정치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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