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양심의 목소리'로 불려온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그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을 섬긴 지도자였다"고 밝혔다. 2017년 파킨슨병 진단 사실을 공개한 뒤 투병해온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맞선 상징적 인물로 남았다.

잭슨 목사는 1960년대 민권운동의 거목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곁에서 활동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카고를 기반으로 흑인과 빈곤층의 권익 신장을 위해 '오퍼레이션 푸시'를 창립했고, 1984년에는 여성·성소수자 등으로 연대한 '무지개 연합'을 출범시켰다. 두 조직은 훗날 레인보우푸시연합으로 통합돼 미국 소외계층을 아우르는 대표 단체로 자리 잡았다.

그는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해 흑인 정치 세력화의 가능성을 현실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훗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영향력은 국제사회로 퍼졌다. 공식 직함 없이도 시리아, 쿠바, 이라크 등 분쟁지에서 억류자 석방을 이끌어내는 '비공식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6년 방한해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지지를 표명했고, 그를 '한국의 넬슨 만델라'라 부르며 연대했다. 2018년에는 한반도 종전 선언과 평화를 촉구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에도 경찰 폭력을 강하게 규탄하며 흑인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정파를 초월한 추모도 이어졌다. 특히 민주당 인사들에게 인색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그는 보기 드문 '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라며 "강한 개성과 실용적 지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오바마 당선에 큰 역할을 했지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과거 자신의 빌딩에 레인보우 연합 사무공간을 제공한 일화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형사사법 개혁과 흑인대학 지원 등에서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고 밝히며 유가족에 깊은 애도를 전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이라 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추모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도 "인간 존엄을 위해 멈추지 않은 지도자"라고 기렸다.

반세기 넘게 거리와 정치, 외교의 현장을 오간 잭슨 목사의 삶은 미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진통의 역사이자,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자유와 평등의 과제를 상기시키는 유산으로 남게 됐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제시 잭슨 목사가 2020년 6월 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구금 중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에게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제시 잭슨 목사가 2020년 6월 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구금 중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에게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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