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책사 배넌, 엡스타인에 난민옹호 교황 비난

교황 권위 함께 실추시키자며 영화 제작 등 제안

엡스타인, ‘실락원’ 사탄 문구 인용해 교회 조롱

실제 교황 권위 무너뜨리는 일 꾸몄는지 조사 중

고 프란치스코 전 교황.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 프란치스코 전 교황.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성년 성착취범 엡스타인의 파일로 미국 월가·정가·경제계 최상류층의 도덕적 정체성이 붕괴되고 있는 가운데, 엡스타인이 교황에까지 ‘사탄의 손’을 건네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 CNN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엡스타인과 가깝게 지내던 정치 컨설턴트 스티브 배넌이 엡스타인에게 당시 로마주교였던 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위를 추락시키자는 제안을 했고, 엡스타인이 이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만 엡스타인이 실제로 교황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을 행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추후 조사를 통해 그 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배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야 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스티브 배넌이 교황에 모종의 일을 꾸미자자고 제안한 시기는 엡스타인이 2008년 아동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수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CNN은 엡스타인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배넌과 긴밀히 소통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공개된 미 법무부의 엡스타인 파일에 따르면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2019년 6월 엡스타인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프란치스코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클린턴, 시진핑, 유럽연합(EU)”을 거명하며 엡스타인에게 이들을 함께 무너뜨리자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민족주의를 강력히 비판하고 이주민 옹호를 자신의 교황권 핵심 가치로 삼으며 트럼프의 ‘극우적’ 세계관에 맞서온 대표적인 인물로 통한다.

배넌은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을 자신의 주요 주장인 ‘주권주의’의 걸림돌로 봤다. 주권주의는 2018년과 2019년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적 정치 캠페인 가운데 하나였다.

배넌은 EU를 “주권을 강탈하는 관료 집단”으로 규정하고 EU 회원국들이 EU에 양보한 입법 사법 국경통제권을 다시 찾아와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배넌은 2018년 영국 주간지 ‘더 스펙테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을 “경멸받아 마땅한 인물”로 묘사하며 그가 “초국가적 엘리트”의 편이라고 비난했다. 극우 성향의 마테오 살비니 당시 이탈리아 부총리에게는 교황을 “공격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고 CNN은 지적했다.

또한 그는 엡스타인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책 ‘바티칸의 침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2019년 출간된 ‘바티칸의 침실’은 바티칸 성직자의 80%가 동성애자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책이다. 배넌은 책의 저자와 만나 영화 판권 계약 등을 논의한 후 엡스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당신이 ‘바티칸의 침실’ 영화의 제작 총괄”이라고 언급했다.

엡스타인과 배넌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롱거리로 삼기도 했다.

바티칸이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넌이 공유하자, 엡스타인은 존 밀턴의 시 ‘실낙원’ 중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날 때 한 구절인 “천국에서 시중드느니, 지옥에서 다스리는 편이 낫다”라는 문구를 인용해 답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두 사람의 정치적 지향을 보면 엡스타인이 배넌의 ‘제휴’ 제의에 수긍은 했으나 행동으로 옮겼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을 보인다.

엡스타인 역시 월가 글로벌 금융자본에 줄을 대고 있었고, 기괴한 행위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그의 맨해튼 사저에 드나들었던 인물들은 글로벌 금융자본가와 산업가, 빅테크 기업인 등 세계화 추종의 글로벌리스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난민 이동을 옹호하고 민족주의를 규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을 보면 엡스타인이 천년 이상 일부 유럽 상류사회에 내려오는 일종의 비의(秘儀)를 본뜬 사탄의식을 행했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이는 가톨릭 교회와 상충된다는 점에서 엡스타인이 교황의 명예를 실추시키는데 동조하거나 조롱했다는 근거로는 볼 수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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