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투표자 신분확인 ‘미국을 구하라’ 법안 통과

민주당은 거당적으로 반대, 상원서 필리버스터 예고

선거의 가장 기본인 유권자 신분 확인이 어려운 미국

선거 공정성 주장 이면엔 공화·민주 모두 ‘표 계산’

2020년 부정선거 의혹 조지아주 수사에 관심 집중

마이크 존슨(오른쪽 세 번째)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을 구하라 법안’(SAVE America Ac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이크 존슨(오른쪽 세 번째)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을 구하라 법안’(SAVE America Ac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하원이 11일(현지시간) 투표 시 시민권자(유권자)임을 확인토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을 구하라’(SAVE America Act)라는 이름의 이 법률안은 공화당 의원 전원의 찬성과 한 명을 제외한 민주당 의원 전원의 반대, 218대 213으로 가결됐다. 미국에서 구체적인 선거법은 연방 관할이 아닌 주 소관이기 때문에 이 법안은 선거법이 아닌 각주 선거와 관련한 연방 차원의 일반 법규다.

상원으로 넘어간 법률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민주당이 거당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행사할 것이 확실하다.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60석이 필요하지만 공화당 의석은 53석이다. 이런 점에서 뉴욕타임스(NYT)는 법안이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계는 답답하다. 특히 한국인들에겐 도무지 이해 불가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신분 확인이란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절차가 왜 미국에서는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한국처럼 주민등록증 같은 전 국민에 통일된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권이나 또는 운전면허증, 소셜 시큐리티 카드 등이 용도에 따라 활용된다. 따라서 선거에서 본인 확인을 하는 작업이 한국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뤄지기 힘들다. 이번 ‘미국을 구하라’ 법안도 이런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여권과 출생증명서로 본인을 확인하라고 규정한 것이다.

다음으론 공화·민주 양당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선거에서 비 시민권자의 투표를 방지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분 확인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봐도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대의명분 뒤에는 표 계산도 깔려 있다. 신분 확인 절차가 비교적 쉬운 유권자들은 백인, 중산층 등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반면 유색인종, 이민자, 저소득층은 신분 확인 절차가 번거롭고 이들은 주로 민주당 지지층이다.

민주당의 셈법은 공화당의 그것과 정반대다. 민주당은 신분 확인 강화가 선거의 공정성을 빙자해 투표 행위에 장벽을 치는 것이라며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이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법안은 유권자 증명을 위해 출생증명서 원본이나 여권을 요구하는데, 약 2100만 명의 미국 시민이 이 서류를 즉시 확보할 수 없는 상태(분실, 보관 미비 등)라는 것이다. 결혼으로 성(Last name)이 바뀐 수천만 명의 여성들은 출생증명서와 현재 신분증의 이름이 달라 투표 등록 시 추가적인 법적 증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고 반박한다.

결국 공화당은 ‘한 표라도 부정 투표가 있다면 선거 결과 전체를 믿을 수 없다. 절차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민주당은 ‘절차가 너무 엄격해서 선량한 시민이 투표를 포기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다’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NYT도 상원에서 법안 통과 가능성이 낮은 이유도 이처럼 두 당의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을 둘러싼 갈등은 미국인들에게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이슈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부정선거로 미국인의 주권이 침해되는 것보다는, 아무리 힘들어도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미국인 절반(공화당 지지자 중심이지만)가량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신분 확인 절차가 허술해 투표권이 없는 비 시민권자(주로 불법체류자나 영주권자 등)들이 투표를 했거나 또는 대리 투표가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류를 타고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취임하자마자 2020년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을 밝혀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이 조지아주 등 일부 지역의 선거 기록을 확보하면서 논쟁은 다시 법적·제도적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와 공개 발언에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권리가 있다”며 “선거의 투명성을 되찾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연방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진실에 접근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 역시 재검증 작업이 특정 후보의 승패를 뒤집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후 선거 제도를 바로잡기 위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국면의 분수령은 FBI의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선거관리기관 압수수색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풀턴카운티 정부는 연방 당국이 가져간 기록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압수수색 영장 공개도 요구했다. 롭 피츠 카운티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다시 확인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NYT는 FBI 영장 진술서를 인용해, 이번 조사가 오랫동안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 측의 제보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영장에 포함된 의혹 상당수가 과거 주 정부나 독립적인 감사를 통해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고 전했다.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 역시 일부 증언자가 공화당 인사나 기존 의혹 제보자들이라고 보도하며 신빙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측은 “과거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예전에 내려진 결론이 있다고 해서 추가 조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연방 수사기관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진영이 특히 강조하는 지점은 유권자 자격 확인이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우편투표가 급증하면서 시민권 여부와 본인 확인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문제의식이 ‘미국을 구하라’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미국 시민만이 미국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라며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왜 논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시민권 증명 강화를 둘러싼 우려도 크다. 브레넌정의센터는 상당수 유권자가 즉각적인 서류 제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단체는 자료를 인용해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필요한 문서에 쉽게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NYT와 인터뷰에서 선거 전문가 데이비드 베커는 “이미 반복적으로 검토돼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난 주장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정치적 불신을 키울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아 주정부 역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에 따르면 브래드 라펜스퍼거 조지아주 총무장관은 “조지아의 선거는 안전했고 우리는 수차례 이를 입증했다”며 “납세자의 돈으로 끝난 논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주 정부가 과거 감사 과정에서 충분히 협조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연방과 주 사이의 권한 문제도 다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부패가 벌어지는 곳이 있다면 연방이 나서야 한다”고 말하며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두고 헌법 질서를 흔드는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주 정부가 관리하는 선거 체계를 정치적 이유로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조지아주 부정선거 의혹 수사의 압수된 자료에서 무엇이 나올지, 실제로 형사 책임이나 제도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2020년을 둘러싼 공방이 이번 ‘미국을 구하라’ 법안 대결 같은 선거 규칙을 다시 정하는 사생결단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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