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반도체부터 다양한 가전 신제품, 전자 산업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수첩에 옮기듯 기록하는 코너입니다.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궁금했던 신제품의 후기나, 기술·산업의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이 이제 속도가 아니라 높이의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8단에서 12단으로, 다시 16단으로. 차세대 HBM5·6 시대에는 20단 이상 적층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확장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쌓을수록 기술적으로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온다.
이달 열린 세미콘 2026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HBM4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고객 맞춤형 제품군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고,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제품군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SK하이닉스가 주도했던 리더십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가운데, 차세대 제품군에서는 양사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드는 구조다.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데이터 처리량은 증가하지만, 동시에 발열·전력·수율 문제가 함께 증폭된다. 특히 16단 이상부터는 기존 마이크로 범프(칩과 칩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초미세 납땜 돌기) 방식의 한계가 뚜렷해진다는 분석이 많다. 칩 간 간격이 좁아질수록 열이 빠져나갈 공간은 줄어들고, 불량 가능성은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본딩’을 거론하고 있다. 기존 범프를 없애고 칩과 칩을 직접 접합하는 방식으로, 신호 지연을 줄이고 전력 효율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정 난이도가 높고 초기 수율 확보가 관건이다. 이에 따라 HBM5·6 시대의 승부는 적층 숫자가 아니라, 이 본딩 기술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HBM6 이후에는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적층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아키텍처 자체를 바꾸는 시도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3D 패키징을 넘어 칩렛 기반 메모리 구조 확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세미콘 2026에서 송재혁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차세대 제품으로 준비 중인 커스텀(c)HBM과 zHBM을 소개했다. 전력 소모는 줄이면서 성능은 개선한 제품군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 공정의 한계를 AI 기반 R&D 역량으로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성훈 SK하이닉스 부사장은 “현재 메모리 업계에서 D램은 10나노미터(㎚)급 초미세 공정 진입과 낸드의 초고적층 경쟁으로 인해 기술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이런 난관 속에서도 개발 주기를 유지하기 위해 테크 개발에 플랫폼(어느 한 세대 제품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틀) 개념을 도입했고, 기술 난이도를 정량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HBM 전쟁은 겉으로는 ‘몇 단을 쌓았는가’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수율, 발열, 전력, 그리고 본딩 기술이라는 복합 방정식이다. 더 높이 쌓는 쪽이 승자가 될지, 아니면 다른 해법을 먼저 찾는 쪽이 판을 바꿀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최근 만난 반도체 장비업계의 관계자는 “차세대 공정을 도입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고객사들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기술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에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