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중대한 전환점에 들어섰다. 자민당의 선거 압승은 정권 연장의 의미를 넘어, 전후(戰後) 질서가 부여한 울타리 밖으로 나설 수 있는 ‘개헌 동력’을 마련했음을 의미한다. ‘평화국가’에 머물지 않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간다면 이는 제국주의 복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파장은 동아시아 전체로 번질 수 밖에 없다.

◆자민당 압승, 개헌 현실화

일본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중의원 해산이라는 고위험 카드를 던졌고 성공했다.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쓸어 담았다. 강단과 계산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다.

무엇보다 선거를 앞두고 중국을 정면으로 자극한 것이 승부수였다. “대만 침공 시 일본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는 발언은 중국의 강경 반응을 불러왔고, 이는 일본 내 반중 감정, 애국주의, 안보 불안을 증폭시키는 촉매로 작용했다.

사실, 다카이치의 ‘유사시 군사력 행사’ 발언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미국은 이미 대만 문제에서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개입’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이 구조에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일본의 개입은 선택이 아니라 자동적이다.

다카이치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던 전제를 꺼내 논란으로 만들었고, 그 논란을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했다. 긴장을 키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방식은 언제나 선거에선 강력한 법이다. 자민당은 ‘강한 일본’을 내세웠고, 유권자는 불안한 국제 환경을 의식해 표를 몰아줬다. 어찌 보면 전후 질서 아래 억눌러졌던 ‘제국의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이제 시작이다. 중의원 3분의 2를 넘긴 의석은 자민당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힘의 크기다. 그 힘의 방향이 ‘개헌’이라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일본은 정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갈 것인가.

◆‘전쟁 가능 국가’로 가나

현행 일본 헌법은 패전 이듬해인 1946년 공포된 뒤 1947년 시행됐다. 올해는 헌법 공포 80주년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말하는 헌법 개정은 구체적으로 헌법 9조의 개정을 뜻한다. 헌법 9조는 전후 일본의 정체성이다. 9조는 두 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해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혹은 무력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포기한다’이다. 2항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이다.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 포기하고,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어 ‘평화 헌법’이라고 부른다. 헌법 9조 때문에 일본에는 군대 대신 자위대가 존재하고, 무기는 보통 ‘방위 장비’라고 불린다.

자민당은 오래전부터 이를 ‘족쇄’로 인식해 왔다.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헌법에 명기하고, 무력 공격 시 내각에 입법 권한을 집중시키는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개헌을 추진해 왔다. 이번 자민당 압승으로 이제 개헌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는 여기에 더해 ‘9조 2항’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법과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을 그대로 두면, 자위대에 대한 논란만 지속되고 미국과 동등한 안보 동맹도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헌은 절차가 까다롭다. 참의원과 국민투표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중의원과 달리 상원인 참의원은 여전히 여소야대 구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이미 일본은 방위비를 꾸준히 늘리면서 준(準)군사대국 단계에 들어섰다. 적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표현으로 공격적 군사 개념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헌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일본의 안보 정책은 이미 ‘전후’에서 벗어났다.

이는 미국의 묵인 혹은 활용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 견제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부담을 대신 질 수 있는 행위자를 필요로 한다. 일본이 최적의 선택지다.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 입장에서는 위험이 아니라 비용 절감 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 9조가 개정된다면 일본은 명실상부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평화 국가’에서 벗어나 군사력과 동맹을 활용해 주변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성격이 바뀌게됨을 의미한다.

군사력이 ‘방어’가 아닌 ‘관리’의 수단이 되다면 일본은 현대적 제국주의로 기울 소지가 크다. 일본이 세계 패권을 다뤄본 경험을 가진 나라라는 점에서 본다면 더욱 그렇다.

◆동아시아 대전환기, 韓은 준비됐나

일본은 과거에 제국을 건설했다. 힘을 어떻게 축적하고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안보 전환은 한때 제국이었던 국가가 다시 그 역할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다.

물론 ‘대일본제국의 부활’이라는 표현은 감정적 과장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군사·외교·경제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회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질적 제국이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중국과 한국이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일본 제국의 확장은 중국은 전쟁으로, 한반도는 전초기지화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과 역할 확대는 사실상 대중 봉쇄선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일본이 미국의 보조 행위자를 넘어 공동 행위자로 변모한다면 중국의 군사 옵션은 급격히 제약된다. 중국에게 일본의 위상 변화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이다.

한국 역시 큰 부담이다. 미일 동맹이 강화될수록 한미 동맹은 하위 변수로 작동할 위험이 커진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이 기정사실이 되면, 한국의 결정권은 줄어든다.

그렇지만 일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을 읽지 못하면 위험하다. 냉정한 분석과 준비가 필요하다. 대책 없는 낙관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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