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생활 속 금융 접점'을 넓히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증시 활황으로 자금 이동이 빨라지면서 금리 0.1%대의 저원가성 예금이 흔들리자 고금리 예금이나 은행채에 의존하지 않고도 수신 기반을 지킬 수 있는 대안으로 임베디드 금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은행 앱을 벗어나 소비자가 머무는 플랫폼 안으로 금융 기능을 옮겨 자금이 자연스럽게 계좌에 머물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불장에 요구불예금 급감… 자금 조달 어쩌나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51조5379억원으로 전월 말 674조84억원 대비 22조4705억원 감소했다. 한 달 기준 감소 폭이 22조원을 넘은 것은 2024년 7월(29조1395억원 감소) 이후 1년 6개월 만에 최대치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자금으로 급여, 상여금, 기업 유휴자금 등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성격이 강하다. 시장 상황에 따라 월별 변동성이 크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요구불예금은 지난해 말 한 달 새 큰 폭으로 늘었다가 올해 들어 다시 감소하는 등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증시 기대감이 커지면서 자금이 은행 계좌에 머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불예금 이탈이 단순한 잔액 변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원가성 예금이 줄어들 경우 은행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이나 시장성 조달 수단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수익성 방어 여력은 약해질 수 있다. 은행권이 요구불예금을 '핵심예금'으로 부르는 이유다.
◇결제부터 저축까지… 은행이 택한 '생활 속 수신 전략'
은행들이 주목한 해법은 임베디드 금융이다. 금융 상품을 은행 애플리케이션 안에 묶어두는 대신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에 통장 개설, 결제, 예치 기능을 결합해 자금을 묶어두는 방식이다. 금리 경쟁이 아닌 이용 빈도 경쟁으로 수신 전략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은행의 '당근머니 하나통장'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 앱을 통해 통장을 개설하고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당근머니를 계좌에 예치하면 일정 금액까지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중고거래 대금이 오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흐름을 파킹통장 형태로 흡수해 수신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거래 편의성을 유지하면서도 은행 계좌에 자금을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국민은행은 결제·금융 플랫폼과의 결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삼성금융 통합 앱과 협업한 '모니모 KB 매일이자 통장'은 일 단위 이자 지급과 파킹통장 기능을 결합해 출시 이후 판매 한도가 확대됐다. GS리테일과 제휴한 'KB GS Pay 통장' 역시 GS Pay 간편결제 실적에 따라 리워드를 제공하는 구조다. 고객의 결제 자금을 계좌에 자연스럽게 묶어두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한은행 역시 유통·커머스 플랫폼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11번가와 CJ올리브영 등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금리 우대 파킹통장과 전용 통장, 연계 체크카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비 과정에서 금융 혜택을 결합해 고객 이용 빈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우리은행도 최근 글로벌 여행·여가 플랫폼 놀유니버스와 손잡고 NOL 머니에 우리은행 계좌를 연동한 고객을 대상으로 포인트 적립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여행·여가 결제 과정에서 은행 계좌 사용을 유도해 자금이 계좌에 머무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우리은행은 이외에도 CU 등 유통 플랫폼과의 제휴도 확대하며 생활 속 금융 접점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 넘어 인뱅까지…임베디드 금융 경쟁 '활활'
임베디드 금융 경쟁은 시중은행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전문은행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마켓컬리, 교촌치킨, 투썸플레이스, 오뚜기몰 등과 협업한 '위드(With)' 적금 시리즈를 통해 소비 행위와 저축을 결합하며 생활 자금이 계좌에 머무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케이뱅크도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손잡고 전용 체크카드와 결제 혜택, 무신사머니 선불충전금과 연동된 계좌 구조를 선보일 계획으로 커머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흐름을 은행 계좌로 흡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다만 임베디드 금융이 모든 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금융 플랫폼과의 협업이 확대될수록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고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도 함께 관리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역시 소비자 편익과 금융 안정성 간 균형을 강조하며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요구불예금 이탈은 단순한 잔액 감소가 아니라 조달 구조 전반에 영향을 주는 변수"라며 "금리로 자금을 붙잡기 어려운 환경에서 고객이 머무는 생활 플랫폼 안으로 금융을 옮기는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임베디드 금융을 둘러싼 은행 간 경쟁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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