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아무 것도 안해도 괜찮은 1500원의 공간

주인 없는 가게에서 발견한 조용한 환대

서로를 보지 않음으로써 이어지는 관계

도시가 허락한 가장 낮은 문턱에서 쉬다

골목마다 주인 없는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2020년 3000개 안팎이던 무인 카페가 최근 1만개를 넘어 4배 이상 급증했다. 인건비 부담과 비대면 선호가 맞물린 시대의 단면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삭막한 풍경이라 하지만, 그 건조한 숫자 너머에는 도시의 고달픈 숨소리들이 모여드는 ‘익명의 서식지’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진짜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르다. 시간 제약 없이 언제든 들어갈 수 있고,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새벽 두 시에 들어가도 눈치 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무심함’에 마음을 녹이고자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점원의 명랑한 “어서 오세요”도, 단골임을 확인하는 안부도, 메뉴를 재촉하는 시선도 없다.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도 없다. 그저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고 결제한다. 기계가 ‘툭’하고 컵을 떨어뜨리면, ‘윙’ 하며 음료를 채워준다. 일반적인 카페에서 우리는 때로 능숙한 연기를 하기도 한다. 메뉴판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계산을 하기도 하고, 비싼 메뉴를 일행에게 체면상 권하기도 하며, 뒷사람 눈치에 긴장하기도 한다. 무인카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구석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커피 한 잔만 들고 있어도 누구 하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애써 대화할 필요도, 표정 관리할 이유도 없다. “여긴 무슨 일이야?”라고 물을 사람도 없다. 1500원으로 산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다.

이 공간의 진짜 힘은 냉정한 경제적 현실 앞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일반 카페의 커피 한 잔은 소비 능력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이 되었다. 6000원, 7000원을 넘어서는 가격표 앞에서 우리는 매번 자격 심사를 받는 것만 같다. 화려한 매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서로의 옷차림과 노트북 브랜드, 혹은 대화의 품격을 재빨리 알아낸다.

그 게임에서 비켜선 곳이 바로 무인 카페다. 1500원은 도시가 누구에게나 열어둔 가장 낮은 문턱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를 들고 들어와 커피와 함께 자리를 지켜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다. 이 플라스틱 의자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존엄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도시는 점점 화려해지지만, 이 1500원짜리 입장권이 주는 평등함이야말로 누군가에겐 가장 따뜻한 복지가 될 수 있다.

천장 모서리에 달린 반구형 CCTV가 이 공간의 유일한 ‘시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렌즈는 위로가 된다. 인간의 시선은 언제나 판단을 동반한다. 상대의 옷차림, 수심 가득한 표정, 구부정한 자세, 심지어 깊은 한숨 소리까지도 인간의 눈은 끊임없이 분석하고 해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 건조한 렌즈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울고 있든, 엎드려 잠들어 있든, 세 시간째 같은 컵을 쥐고 멍하니 있든, 단지 보안을 위해 기록할 뿐이다. “괜찮아?”라는 사람의 질문보다 “네게 관심 없다”라는 기계의 무심함이 더 깊은 안도가 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왔다. 상사의 눈초리, SNS 속 완벽한 타인들, 길거리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무수한 판단의 순간들. 그 모든 시선에서 벗어나 ‘읽히지 않을 권리’를 갖는 것, 그것이 오늘날 비싼 사치가 되었고, 역설적으로 가장 저렴한 공간에서 우리는 그것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

물론 1500원의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테이블, 누군가 흘리고 간 커피 자국,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위생 상태. 그러나 불편하지만은 않다. 무인 카페의 느슨함은 그래서 방치가 아니라 일종의 방목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거리가 훤히 보이지만, 안의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 섬처럼 존재한다. 이어폰을 낀 청년, 책을 펼쳐놓은 중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노인.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이 공간의 암묵적 예의이자 서로를 살리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로를 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연결이다. 우리는 함께 ‘보지 않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의 울음을 못 본 척하고, 누군가의 한숨을 듣지 못한 척한다. 관계의 부재를 함께 지키는 관계, 그것이 이 공간이 제공하는 이상한 종류의 위로다. 주인 없는 거실, 그러나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 거실이다. 비록 화려한 환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배제도 없다. 이 공간이 줄 수 있는 가장 묵직하고도 부드러운 평온이다.

도시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지나치게 세심한 친절을 베푼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취향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서비스는 정교해졌다. 그러나 인간은 가끔 해석되지 않기를, 타인에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그 욕망은 더 매섭고 절박해진다. 무인 카페는 사람 냄새 없는 삭막한 공간이 아니다. 타인의 뜨거운 시선에 덴 아픈 영혼을 잠시 식혀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문을 나선다. 차가운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밤이다. 들어올 때보다 발걸음은 조금 가볍다. 1500원이 준 것은 단순히 커피 한 잔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시간.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손바닥 한 움큼의 자유. 그것이었다.

한 시간 후, 같은 창가 테이블에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하루를 견디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모르고 서로의 이야기를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말 없는 환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살리고 있다. 도시의 골목마다 늘어나는 주인 없는 가게들. 그곳에서 도시는 가끔 이렇게, 아주 조용하게 우리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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