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서비스업 취업자 9.8만명 뚝
대형로펌 채용도 20~30% 줄어
회계사 수습 등록률은 26% 불과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AI와 진입장벽이 높은 ‘자격증 직종’ 간의 일자리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법률·회계·세무 등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던 분야에서 AI 활용이 증가하면서 구조적 재편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전문직 일자리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국가데이터처가 11일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산업별로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에서 취업자가 9만8000여명 줄어들었다. 2013년 산업분류 개편 이후 최대 폭이다. 전문 서비스업은 법률·회계·세무·금융 등 고도의 전문기술을 요구하는 직업군이 포함된 영역이다. 빈현준 데이터처 사회통계국장은 “2023년부터 추세적으로 크게 증가해온 과정에서 기술적 조정이 있었고, 전문 서비스업 관련해 AI 발전으로 신입 직원 채용이 둔화한 것 아닌가 한다”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이 더 이상 평생 직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박모(52) 변호사는 2020년부터 타 직군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AI 시대에서 스스로 어떤 특성이 없는 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며 “요즘 로펌들은 챗GPT보다 소장을 잘 써보라는 시험을 본다는데 내가 지금 그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소회했다.
실제로 변호사를 대규모로 채용했던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대형 로펌은 20~30% 정도 채용 숫자를 줄였다.
10대 대형 로펌들은 자체 AI 시스템을 구축해 수십만 건의 증거 기록을 수 초 만에 분석하고 있다. 과거 신입 변호사들이 맡던 실무 수습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추세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실무수습 기회를 얻지 못해 변협 연수에 몰리는 신규 변호사 수는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대형 로펌이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지방대 로스쿨은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있다. 올해 연세대 로스쿨을 졸업하는 중형 로펌에 취업한 권모(28)씨는 “소위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들의 대형 로펌 취업이 줄어들면서 연쇄 이동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지방대 로스쿨 출신들은 취업시장 바깥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로스쿨 정원을 축소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전국 로스쿨 학생협의회가 발표한 ‘2026 법학협 로스쿨 제도 개선 재학생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학생의 74.3%가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인회계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30명에 달하는 회계사를 ‘경력 요건’ 없이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회계사를 관리하는 주무부처인 금감원이 고용 한파를 겪고 있는 ‘미취업 회계사’ 관리에 직접 나선 것이다.
서울 모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서모(29) 회계사는 “법인 입장에서 회계사 수를 줄이는 게 장기적으로 고정지출을 막아 운영에 유리하다”며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면 회계법인에 들어가 수습교육을 받아야 정식 회계사가 된다. 요새 채용이 없어서 지망생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회계학회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실무 수습기관에 등록한 인원은 지난해 10월 22일 기준 338명(26%)에 불과해 800여명이 이른바 ‘미지정 회계사’ 상태다. 이들이 대거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시험 최소 선발 인원은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로펌과 회계법인이 고민하는 점은 ‘비용’이다. 월 5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며 신입 변호사를 채용하는 것보다 월 10만원대 비용으로 법률·회계 AI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계약서 초안 작성, 판례 검색, 대량 문서 검토 등 정형화된 업무는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변호사나 회계사만큼 직접적인 타격은 없지만 변리사와 세무사도 ‘AI 고용한파’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생성형 AI가 진화할수록 특허명세서 초안 작성, 유사상표 분류 등 변리사 등의 보조 역할이 대체되기 때문이다. 변리사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신입 변리사 채용을 줄이거나 변리사무소가 문을 닫는 등 경쟁 과열로 인한 후유증 우려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직종 고용 한파를 AI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종 배출 인원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소송 건수와 기업 자문 수요는 경기 둔화와 맞물려 정체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기업 법무팀이 법률이나 회계 업무를 외부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양일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서 회계사는 “아예 직업 자체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상황과 맥락의 파악은 아직 인간이 유리하고, 회계사는 기업 감사 활동을 하기 때문에 고유 특질이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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